[오한숙희의 만남]

서귀포에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식도락이다. 그 으뜸은 단연 제주의 토속음식인데 어느날 오로지 복국만을 해왔다는 집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테이블은 달랑 3개, 늦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가운데 테이블만 남아 있었다. 뭘 주문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들은 주문한 우리 음식이 나오기 전에 다 먹고 일어섰다.

 "어르신 맛있게 드시고 사십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오래된 이웃처럼 자상하게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 몇날 몇일이 지났다. 택시를 탔는데 출발하고 좀 지나자 기사님이 내게 물었다.

"그날 복국은 맛있었읍데강?" 오잉?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
"저번 날 어머니 모시고 복국집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어머, 어떻게 아세요?"

세상에, 그날 메뉴조언을 해주셨던 그 분이었다. 서귀포가 정말 좁기는 좁구나 하고 웃었다. 그런데 그게 좁아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몇일 전에 깨달았다.

친구 내외가 서울에서 제주로 출장을 왔다가 어머니께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노라고 서귀포로 왔다. 비행기 탈 시간까지 넉넉지 않아서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친구네가 먼저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얘기에 빠져 있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나를 쿡 찌르셨다.

"얘, 내 핸드폰이 없다"

집에 놓고 오셨을 거라고 했으나 한사코 아니라고 안심을 못하셨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에게 서귀포 구경을 시켜주고 돌아오니 저녁때였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끌탕이셨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얘"

유추컨대 택시에 흘리신 게 분명했다.

"아냐, 나는 택시에서 내릴 때 의자를 다시 돌아본단말야"

까만 전화기가 까만 바닥에 떨어지면 보이지 않는 법.

"어머니, 스마트폰도 아니고 구형폰에다가 서귀포는 도둑도 없는 동네이니 분명히 찾을 거예요. 걱정마세요"

그러나 나도 100% 자신이 있지는 않았다. 밤 11시, 야근한 언니가 그제야 돌아왔다.

"엄마 핸드폰 택시에 놓고 내리셨지?"

비몽사몽하다가 잠이 확 깼다. 택시 기사님이 최근 통화를 눌러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제사 발을 뻗고 잠을 청하셨다. 덕분에 우리도 편히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기사분께 전화를 걸었다.

"제가 오늘 밭에 일을 나와서 내일 갖다 드리면 안 될까요? 미안합니다"

아니, 미안한 건 우리인데....핸드폰을 잃었다가 착한 사람을 얻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날, 전화기를 가지고 온다는 연락을 받고 대문앞에 나가섰는데 예약불이 켜진 택시가 오고 있었다. 그렇지, 오는 도중에 다른 손님이 택시를 잡으면 안 되니까. 기본요금은 드려야 도리일 터였다. 그러나 기사님은 거세게 손을 내저으며 인사를 제대로 할 틈도 없이 쌩하기 가버리셨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만 한번 더 남기고. 무뚝뚝하게 생기신 분이 어떻게 저리 곱딜락한 마음을 속에 품고 있었을까.

비가 온 다음날 탔던 어떤 댁시 기사는 완전 감성파였다. '맑개 개니 한라산이 다 보여서 좋다'는 내 말을 받아서 그는 서귀포 사랑을 줄줄이 시처럼 읊었다.

"한라산 정말 예쁘죠? 나는 서귀포 태생은 아니지만 이제 서귀포를 떠나서는 못 살거 같아요. 고사리철이 오면 새벽에 운동삼아 고사리 꺾고 11시쯤 일을 나오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행복한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는 손님을 행복하게 할 수밖에 없다.

서귀포는 택시를 타면 거의 개본요금 거리에서 움직인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말을 많이 할 수 있으랴마는 그래도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정이 배어 있음을 이제는 느낄 수 있다.

거동이 느린 어머니를 모시고 탔다가  내릴 때 '천천히 조심해서 내립서'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장애가 있는 딸애를 데리고 탔을 때 간혹 괴상한 소리를 내도 '그냥 놔둡서, 괜찮수다' 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대도시에 살면서 내가 힘들었던 것은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야하는 세상에서 서로 독촉하는 분위기였다. 거기서는 노인과 아이와 장애인은 귀찮은 존재였다. 그러니 그들과 동행하는 일은 여간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한라산의 넉넉한 품에 안겨 탁 트인 바다와 벗삼아 사는 서귀포, 그 속에서 혈관을 따라도는 피처럼 빨갛게 '빈차'를 켜고 달리는 택시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간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그 좋은 기사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여서 말이다.

제주에는 4촌도 없다. 부모와 형제 다음으로 가까운 촌수 3촌까지만 있다. 손님을 한번 타고 내리면 끝인 관계가 아니라 이웃삼촌으로 여기는 그들을 나도 이제는 삼촌으로 받아들인다. 하영 좋은 택시 삼촌들, 오늘 손님 많았습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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