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바람의 아이 -13부- (장 수 명)

 여자 앵커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나영의 가슴에 꽂혔다.

 ‘모두 다 탔다고. 기록까지도.’
 갑자기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럼 우리기록……, 아기들의 기록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영은 자기도 모르게 긴 한 숨이 뱉어졌다.
 ‘이것이구나. 이것이었구나.’
 그렇게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무엇인가가 걷어지는 것 같았다.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아니 뭔가 해낸 듯 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영은 순간 놀란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인간의 이기심이 갖는 평온함이라니……, 기절할 것만 같았다.
 ‘아~, 하느님, 정말 제가 이처럼 독하고 잔인한 사람이었습니까!’
 나영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가짜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애초에 한 번도 진실했던 적이 없는 자신처럼 생각되었다.

 

 ‘이제 아무도 용서 해 주지 않겠지.’
 나영은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리기엔 더욱 두려웠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더 강했다. 지금 자기 옆에서 즐거운 웃음을 웃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보인다. 그들은 나영이 아들을 낳았다고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딸을 낳으면 아범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서라도 아들을 낳으려고 했지!”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시어머니. 손자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여자. 3대 독자인 남편. 그에게 아들을 남겨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아대던 그녀가 웃고 있다. 집안의 대가 끊긴다고 나영만 보면 눈 꼬리를 치뜨고 역정을 내던 시어머니그녀가 말이다. 게다가나영의 손을 어루만지며 수고했다는 말을 뱉으며 나영을 보고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지금은 웃고 있다. 언제 그처럼 매몰차고 표독스런 시어머니였는지 까맣게 잊은 듯했다.
 ‘매몰찬 여자’
 나영은 시어머니 손에서 제 손을 빼내며 고개를 흔든다. 절대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 한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10분후에 아기 면회시간입니다.”
 간호사는 나영의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면서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아이고, 고마워요.”
 시어머니는 얼른 나영을 일으켜 세우며 같이 가자고 한다. 나영은 일어서서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다. 하지만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리고, 다리가 휘청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에미야, 아범하고 우리만 다녀오마. 에미 넌 좀 더 누워 있어야겠다.”
 시어미니의 말에 갑자기 가슴이 정신없이 두근거렸다.
 “아니요, 어머니. 저도 아가가 보고 싶어요. 지금 갈래요.”
 나영이 다리에 힘을 주고 슬리퍼를 발가락으로 당긴다.
 “그래, 너도 가자. 아범아 에미 좀 부축해라.”
 나영은 휠체어에 올라앉는다.
 신생아실이라고 적힌 글자 옆 통로를 지나자, 커다란 유리로 한 쪽 벽을 온통 만든 곳이었다. 벌써, 몇 명의 산모들이 유리문을 통해 아기를 보고 있었다. 머리에 초록색 모자를 쓴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유리벽 쪽으로 걸어온다.
 ‘이나영 아기’
 아기는 김진숙 아기가 아닌 이나영의 이름으로 파란 팔찌를 차고 있었다. 가슴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올라왔다가 가라앉는다.
 “아이고, 우리 대감 잘 생겼다.”
 두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정말 나영이 낳은 자신의 아기라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한 번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고 싶다는 강한 모성도 일어났다.
 유리벽 너머에서 간호사가 손짓을 하며 이리로 들어오라고 나영을 부른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시어머니와 남편도 따라선다.
 “산모만 들어오세요.”
 시어머니와 남편을 따돌릴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너무 잘생겼어요.”
 간호사는 아기를 건네준다.
 꼭 감은 두 눈을 억지로 뜬다. 아기는 나영에게 초점 없는 눈을 짧게 맞춰주며 이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나영은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기쁨의 눈물이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미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자기의 아가를 안은 엄마의 마음이 순간 들었다. 나영은 품에 안긴 아기의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아기는 손가락 쪽으로 그 작은 입을 벌린다.
 ‘아~!’
 나영은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난생처음 아기를 낳아 본 것처럼 가슴이 떨리는 환희를 맛보았다.
 “이삼일 지나면 젖이 돌 거예요. 그때 모유 먹이세요.”
 간호사의 친절한 말에 나영은 정신을 찾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영은 아기를 간호사에게 건네주며 신생아실을 나왔다.
 ‘아가야!’

 나영은 그렇게 잊고 있었다.
 지아에 대해서도, 진숙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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