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음악회 가실래요? 숲속에서 하는데, 본 사람들은 한마디로 뿅갔어요. 이번 토요일이 마지막 공연이래요. 시낭송도 하는데, 지난 번에 원희룡 지사가 세줄짜리 시를 읽었어요.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내게 음악회를 권하면서 그 사람은 시까지 읊어주었다.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올 여름 책을 쓴답시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지낸 터에 모처럼의 밤마실로 숲속 음악회가 딱이겠다 싶어 친구와 일찌감치 약속을 잡았다. 이왕이면 예쁜 옷을 입고 기분내야지, 했는데 폭우가 쏟아져내려 예쁜 옷은 커녕 갈까말까 살짝 망설여지기까지 했다. 그 런데 같이 가기로 약속한 친구는 오히려 더 들떠있었다.

"비 오는 소리만도 듣기 좋은데 음악까지 더해진다니, 이거야말로 금상첨화!!  빨리 가게 마씸"

교래리 휴양림 입구 주차장에는 차량이 제법 많았다. 비내리는 깜깜한 숲길, 반딧불이 대신 핸드폰 후래쉬빛을 따라 사람들이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었다.

"빗속에서도 차들이 이리 많은 걸 보면 꽤 인기가 있네"
"오늘은 어떤 가수가 나온대?"

뒷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나도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들려줄 수 있는 가수였으면....
6시 30분, 드디어 공연시작 시간. 그런데 가수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 분위기의 신사가 무대에 서는 게 아닌가.

"여러분, 곶자왈을 아십니까? 공자왈, 맹자왈, 곶자왈"

와하하하 사람들이 웃어댔다.

"곶은 숲이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같은 돌덩어리를 말합니다. 즉 곶자왈이란 암석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며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제주도의 허파라고 하겠습니다"

허파? 갑자기 아마존 밀림이 떠올랐다. 그 숲은 지구의 허파라고 불렸다. 낮에도 깜깜할 만큼 빽빽한 나무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여 온갖 배기가스 속에서도 지구의 생명체들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그곳에 햄버거 고기를 공급할 목장을 만들기 위해 남벌을 하기 시작했다.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청부살해를 당하기까지 했다.

"자, 곶자왈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중한 곳인지 영상으로 보여드리지요"

원시적인 숲, 태초의 고요가 깃들어 있는 듯 신비한 분위기의 숲이 화면에 나타났다. 살고 있는 식물이 600여종이라 했다. 그중에는 환경부 멸종위기 보호야생식물들이 있었다. 세계적 멸종위기의 곤충도 곶자왈에는 살아 있었다. 깊은 바위층에 스며든 물은 맑게 정화되어, 그게 바로 삼다수!.

세상에, 이런 보물을 전혀 반대로 알고 있었다니! 내가 곶자왈을 처음 안 것은 올레 7-1코스를 걸을 때였다. 울퉁불퉁 걷기조차 힘든 바닥과 한낮에도 코앞을 막는 거미줄, '이런 데가 농사 못 짓는 쓸모없는 땅, 곶자왈이야'라는 제주토박이 친구의 말만 듣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이런 숲이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곶자왈은 과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라 오히려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발업자들이 이곳에 눈독을 들이며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도민의 힘으로 곶자왈을 지키자, 곶자왈 한 평 사기,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신사는 곶자왈 공유재단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음악회 또한 곶자왈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초대가수가 제주에 이주한 컨트리 음악가 이탁호씨 인 것도 그가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곶자왈 홍보대사를 맡아 문화해설사교육까지 받았노라했다. 노래와 연주도 그만큼 열정을 다해 사람들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뉴욕 맨하탄에는 센트럴 파크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중앙공원이다. 유엔본부와 세계금융의 중심 월스트리트가 있는 이 금싸라기땅의 정가운데에 직사각형으로 100만평 넘게 뚝 떼어 도심공원을 만든 것이다. 해마다 전세계에서 2천5백만명이 이 공원을 보러 온다. 맨하탄은 약 3.5%를 인공적으로 녹지화했는데 맨하탄 보다 20배가 넘게 큰 제주도에서 자연이 만들어 준 보물숲, 곶자왈을 지키지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공유재단에 가입했다. 곶자왈 한 평 값이 얼마인지 모르나, 월 1만원, 커피 몇잔 안 마시면 곶자왈을 지킬 수 있다니 또 얼마나 쉬운가. 더 깜깜해진 비바람 속을 걸어나오며 혼자 물어 보았다.

"곶자왈, 네가 나를 불렀니? 이 음악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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