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부터 폐막까지’

▲ 영화제 개회식에 서귀포시민과 제주도민들이 몰려 성황리에 치러졌다.
▲ 영화제 개회식이 열린 서귀포성당 입구의 레드카펫 위에서 한 어린이가 머리를 매만지며 뽐내고 있다.
▲ 한 관객이 레드카펫 위를 걸어 영화제 개회식장으로 입장하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지난 23일 시작한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26일 그 막을 내렸다. 영화제는 서귀포성당과 강정마을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애초 개회식은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행정당국과 아무런 일도 도모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던 강정마을로서는 국제영화제의 성공을 위해 한 발 양보한 셈이었다. 그러나 서귀포시의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불허 결정으로 인해 결국 영화제 개회식은 서귀포성당에서 열렸다. ‘배려와 양보 없는 행정’을 대신해 천주교 측에서 영화제의 성공을 위해 영화를 틀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영화제 개회식은 서귀포시민들과 서귀포성당 신자들까지 한 자리에 모인 화합의 장이 되었다. 개회식을 보기 위해 1,000여 명에 달하는 관객들이 몰려와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관객들은 물론 영화제 측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찾아 주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날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전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통하여 더 많은 대중이 평화를, 전쟁이 터진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파괴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무관심과 방관으로 외면하지 않는 그런 평화의 지킴이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밝혔다. 관객들은 강우일 주교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개막이 선포된 후, 영화제 개막작인 《업사이드 다운》이 상영되었다. 《업사이드 다운》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 상영 후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국민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들 때문에 눈물을 훔쳤고,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고 미소지었다. 영화제의 문을 성공적으로 열었다는 안도감과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긴장 속에서 영화제 첫날밤이 지나갔다.

영화관으로 변신한 강정마을회관에서 《GMO OMG》라는 영화가 상영되며 영화제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GMO OMG》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영화이다. 우리 밥상에 침투한 유전자 조작 식품들과 그에 대한 무관심에 경종을 울린다. 이어 4·3을 그린 영화인 《지슬》,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핵발전의 위험을 고발하는 《후쿠시마의 미래》 등이 상영되었다.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총 세 번의 평화포럼이 진행되었다. 포럼을 통해 제주와 비슷한 갈등양상을 겪고 있는 오키나와의 사례를 통해 제주의 앞길을 모색했으며, 영화감독들이 현 세계를 관찰하고 보다 나은 세계를 꿈꾸는 데 기여하는 방법들을 성찰하기도 했다.

▲ 관객들은 의자와 땅바닥에 앉거나 드러누워서 영화를 보고 있다. 강정평화센터.

영화제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강정마을만의 색깔을 살려 만든 강정천 가설 야외극장에서 《그리고 싶은 것》과 《파티51》를 상영했다. 그 중 《파티 51》은 도민들이 기억해둬야 할 영화이다. 최근 제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지역이 문화적으로 가꿔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기존 상인들이 내쫓기는 현상)에 관한 영화다. 마포구 홍대에 위치한 칼국수집 ‘두리반’은 지역이 개발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정용택 감독은 홍대 음악가들이 두리반 및 입주자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모여들어 ‘음악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시끌벅적한 과정을 담았다.

의 공연.


-평화를 위한 거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보다 나은 사회로

폐막식이 열린 영화제 넷째 날인 26일 저녁까지, 10개국에서 온 총 34편의 영화들이 관객들의 큰 호응 속에 상영되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매표소는 물론 각각의 상영관과 행사장마다 ‘붉은발 말똥게’라는 이름으로 모인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화제에 기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봉사자들은 궂은 날씨와 피로한 일정 속에서도 이런저런 일들을 맡아 해내면서 늘 밝은 표정으로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을 맞이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핵발전소에 대한 질문, 세월호에 대한 질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질문, ‘위안부’에 대한 질문, 시리아 난민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질문, 그리고 강정에 대한 질문 등 아프지 않은 질문이 없다. 이렇게 던져진 사회 문제들에 대해 평화를 위한 거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답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들의 몫이다(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야기와 삶을 이어나가며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끄는 정부를 상상하고 탄생시킬 것이다.

▲ '붉은발말똥게'.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자원봉사자들.

폐막식에 참석한 이들은 벌써 두 번째 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내년에도 정말 영화제가 열리게 될까? 행정 당국은 올해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한 번 더 국제적 망신을 자초할까? 강정마을 주민들은 영화제를 어떻게 일궈나가고 싶을까? 영화제 개막식에서는 어떤 공연이 펼쳐질까? 강정마을의 어떤 풍경 속에 새로운 가설극장이 세워질까? 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들이 상영될까?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 시민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제1회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끝났다. 그러나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이제 시작되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