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미 / 돋을양지책드르대표

여든, 왼손가락이 저려 오른 손으로 줴는데 보시락하고 부서졌다. 엄지손가락 첫째마디와 둘째마디를 연결하는 연골이다.

여든셋, 아침밥을 먹는데 어금니에 딱딱한 게 여럿 씹히며 잇몸 신경이 아프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입 속엔 곤밥과 된장국밖에 안 들어갔는데 뭐지? 하며 손바닥에 뱉는다. 위 앞니 네 개가 밥알에 섞였다. 어금니는 부서지고 신경이 몹시 아프다.

여든넷, 자식 놈들이 자꾸만 내 돈을 훔쳐간다. 베개 밑은 너무 쉽고 성경책이나 셋메누리 헤온 이불 속에곱진다. 분명히 거기곱져신디 아무리찾아도 없다.

여든다섯, 자식이렌 해도 아무 소용없다. 날 어신사름 취급곡 지네들만 하하호호 재미지게 놀곡 먹곡 떠든다.

여든여섯, 우리 하르바님, 할마님 생각이 간절하다. 할마님 살아실 땐 집 멍 밧 멍 저것들 다 멕이멍 키와신디, 헤도 헤도 저것덜 나 말은 들은 척도 안 헌다.

옆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친정어머니의 변화하는 모습이다. 어디 가서든 잘난 체하고 곱다는 소리를 듣던 총명부인이다. 여든을 넘기며 놓아 버리는 그 총기들은 자신이 아닌 주변의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아프지만 자연의 흐름이다.

당신에 대한 기억 역시 다를 게 없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이 한 행동을 대단한 결단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오른팔과 왼팔이 있듯이 이 세상엔 오직 오른쪽과 왼쪽만 있다고 믿으시는 당신. 오른쪽이 쎄보이면 오른쪽으로, 남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는 게 잘한다고 쓰다듬어줄 거라고 으쓱대는 당신.

지나치면 부족함만도 못하다는 걸 모르는 당신. 게처럼 한쪽으로만 가다가 벼랑인줄 모르고 뚝 떨어질 당신. 당신 위에 당신, 그 위에 당신 또 그 위에 당신. 줄 잘 잡았다고 대롱대롱 매달린 당신. 언제까지 놓지 않고 자손 대대 매달리고만 살 당신. 안됐지만 사회의 흐름이다. 이런 당신들이 당신주변에 너무 많다. 그 최근의 예로 지난 4월 23일 열렸던 강정국제평화영화제 개막식장 대관 막장극이다. 개막을 코 앞두고 예약된 서귀포예술의전당이 대관을 거부한 것이다. 평화영화제가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나!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정치적이지 않는 행사란 없다. 정치, 정치적, 사전을 찾아보시라. 요즘 낱말 찾는 거 얼마나 쉬운가.

이제 큰일 났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은 총 건립비용이 434억(제민일보. 2014. 06. 16)씩이나 들여서 세운 예술작품이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예술작품을 겉에서 작품으로만 감상해야 할 운명에 처했으니 말이다.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줄줄이 취소되거나 예약거절 당하는, 텅 빈 예술의전당,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찡하다. 씽씽 달리는 찻길에 붙어 지을 때부터 걱정이 들더니만.

자, 상황이 이 지경이니 예술의전당에서 영화 못 돌린다고, 예술제 못한다고, 오케스트라 공연 못한다고 슬퍼말자. 서귀포성당 멋지게 가득 채웠잖은가. 온갖 정치적 색깔이 다양한 인종이 숨죽이고, 웃고, 울고, 떠들고 숙연하며 개막식 우아하게 잘 치렀잖은가. 예술의전당 아니라도 화면발 싱싱하고, 부루투스 사운드 죽여주고, 주임신부님 잘생기고.

내년엔 페스티벌이다. 국제평화영화제에 걸맞게 나라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시가행진을 하는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모오든 영화인과 관객이 평화강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며 서귀포 시내를 손에  손잡고 천지연광장에서 열린 개막식을 가지는 것이다. 축제는 페스티벌이다. 상상만으로도 멋지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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