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正義, 진정한 平和’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오후 7시 30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 특강-희망 대한민국을 말한다' 강연을 통해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체가 드러나자 SNS를 통해 “권력의 막장 드라마이고 사유화의 극치”라면서 “당장 국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그 조사결과에 따라 (대통령)탄핵이든, 사임요구든 그 무엇이든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기 바랍니다”라 강하게 발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주를 찾았다.

지난 14일과 15일, 제주를 방문한 박 시장은 무척 바쁜 시간을 지냈다. 14일 오후, 제주에 도착한 박원순 시장은 가장 먼저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해 헌화와 참배를 한 뒤에 위패봉안소를 찾아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4·3영령을 위로했다. 그리고 방명록에 ‘온전한 正義, 진정한 平和’라 뚜렷하게 새겨 넣었다.

이어 박 시장은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아서 구천을 떠돌고 있을 4·3영령의 넋을 기리기도 했다. 현장에는 이문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양조훈 전 제주 4·3중앙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고희범 전 제주4·3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등이 함께했다.


4·3평화기념관으로 이동해 가진 유족들과의 간담회에서 유족신고 상설화와 유해발굴 신원확인, 유족회 자립기반을 위한 지원 등을 주문하는 유족회 지원 요청에 대해 박 시장은  “4·3은 물론 이곳 평화공원도 아직 미완이다. 유족들의 요구사항들을 포함해서 특별법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세계의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진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함은 물론, 완벽한 민사적 보상과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도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국가 폭력 사례인만큼 국가가 큰 책임을 지고 해결해 가야 하며, 우리 시대의 큰 과제”라고 역설했다.


박 시장은 이날 제주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주최의 특별강연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탄핵 발언과 제주를 방문한 이유가 대권 행보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박 시장은 “나는 대선행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생행보를 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국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제 자신을 성찰하는 기간으로 봐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민을 많이 한다. 나라가 도탄에 빠져있는데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고민이 없을 수 있겠나. 국가 지도자의 길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과 '숙명'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에둘러 그 의지를 표명했다.

대권 도전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으나 강한 비판 발언들과 지역 대상의 민생행보 자체가 대권 도전의지를 드러내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4·3 화두로 시작한 ‘더불어 특강-희망 대한민국을 말한다’ 강연에서 박시장은 제주도 명예도민임을 앞세우며 ‘영혼을 함께하는 제주도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 나치 옹호 발언자들에 대해서 처벌하는 사례를 들며 4·3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발언을 일삼는 자들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법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강연 내내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힘주어 말했다. “국민들과 함께라면 정권을 교체하고, 정치를 교체하고, 시대와 미래를 교체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제주 4·3으로 희생된 분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제대로 된 보상이 되지 않겠나? 제주에서 바람이 불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국민의 바람, 국민만이 그 해답을 가지고 있다. 국민권력시대가 정권을, 시대를,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재삼, 재사 강조했다.


“제주도를 정말 좋아한다”는 박 시장은 “제주는 지금 기회의 땅이면서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람이 몰리는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으나 자칫 지나치면 ‘제주다움’, 제주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도민들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 행정은 청정자연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은 물론 이를 실천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바람 하면 제주가 아닌가. 제주 사람들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제주에서 시작하면 전국이 바뀐다. 제주에서 바람이 불면 전국에 돌풍으로 휘몰아칠 것이다”며 “이 썩어빠진 세상을 제주에서부터 바꿔주시길 부탁드린다”는 요청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틀째인 15일 오전에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 해안도로에서 열린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에서 주관한 '2016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 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주최한 ‘당원의 날’ 행사에 합류했다. 오후에는 구좌읍지역 태풍 피해 농가 현장 방문에 이어 오후 4시, 제주시 아라동 소재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관을 찾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와 면담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강우일 주교와 박원순 서울시장 대화 내용 요약이다.

지난 15일 오후 4시, 천주교제주교구 주교관으로 강우일 주교를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

'평화의 가치' 내재 속 ‘제주다움’ 지키는 지속가능한 제주 기대

 

박원순(이하 박) : 안녕하십니까. 주교님께서는 사회적으로 힘들 때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고 계셔서 저는 물론이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 말씀에 힘을 얻곤 합니다. 평소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면서 늘 뵙고 싶었습니다.

강우일(이하 강) : 네. 반갑습니다.(웃음) 이번에 4·3평화공원에 가시고 또 강연도 해주셨고, 제주4·3 문제를 옛날부터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도와주셨는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국가폭력이라 할까, 인권침해 사건이 여럿 있었지만, 제주4.3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일은 아마 없었죠?

: 한국 현대사에서 제일 심각한 사건인데, 우리 역사에 언급이 잘 안 되니까 국민들이 모르는 부분도 많았다고 할 수 있어요.

: 저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보니까 국가폭력의 많은 사례를 보게 되는데요. 아르메니아라든지 또 아시아에서는 2·28 대만사건 등 모두 냉전시대에 발생했죠. 특히 제주4·3사건은 매우 심각하다고 여겨졌습니다.

: 제주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뼈속까지도 새겨진 사건이지만, 제주 밖에서는 거의 인식을 못하고 그냥 숫자만 알고, 내용이 어떤지는 대부분 모르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래도 박 시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유족들도 많이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 네, 보니까 1단계는 4·3특별법에 따라서 많이 진전됐지만, 그래도 아직도 구체적으로는 안 된 부분이 많더라고요.

강우일 주교

: 유대인들을 보면,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만 아니라 미국 등 세계 각국에 있는 사람들이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과거의 어떤 진실을 캐내려고 여러 측면에서 노력해서 그런 과거 역사 속에서 자기네들 스스로 뭔가 배우려고 굉장히 애쓰는 것을 제가 미국에서 보고 아주 놀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결국 국민들이 그런 제주4·3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심화되고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잘 알고 하면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발전에도 굉장히 도움이 될텐데. 아직 제주 안에서도 이런 작업은 상당히 미진한 상태이죠.

박 : 주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그 결과로 유족들의 그런 마음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좀 더 인권의식이나 역사의식을 확장하는 과정이었으면 좋을텐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지금도 왜, 혐오적인 발언, 행동이 많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로세스적인 측면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보게 되고요.

: 시장님은 청년수당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셨죠? 그렇게 청년들을 위해 애써주시니까 신선하게 들렸는데, 그게 어떻게 됐나요. 보건복지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래서 지금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까?

박원순 서울시장

: 네. 중단됐고요, 저희들이 대법원에 제소를 해 놓은 상황입니다. 그게 참 이해가 안되는 게 정부가 비슷한 일을 하거든요. 저희들과 다른 것은, 청년들을 불신하고, 여기저기 등록해서 연수를 받거나 강의 들으면 돈을 주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죠. 저희들은 청년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 물어보고 그렇게 해봐라, 하면서 시행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뢰와 불신의 차이인 것이죠. 정부는 2조천억원을 쓰고 저희는 시범사업으로 겨우 90억원 쓰는 것인데요. 이 사업 자체가 청년들이 스스로 한 2년 동안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하겠는가, 계속 토론을 해가면서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정책이거든요. 한번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은데 그렇게 되고 있고요. 중앙정부가 자치와 분권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랄까요? 아무래도 저희들이 현장에 가까이 있으니까 좋은 정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많잖아요. 저희가 열의를 갖고 있으니까 저희들이 하는 것을 한번 지켜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은데, 뭐든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일을 그르치는 것이군요.

: 도대체 저희들이 잘되면 대한민국 안의 일이지. 외국에 들고 가는 것도 아닌데. 불신하고 그런 게 문제 같습니다. 주교님께서는 강정 문제로 고민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강정에는 저도 한번 다녀간 적이 있는데 요즘 어떻습니까.

강우일 주교

: 감사합니다. 이제 뭐 기지야 완공됐죠. 제주사람들은 끝난 거 아니냐, 얘기들 하지만 우리는 물리적인 콘크리트 덩어리가 있고 거기 함정이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평화를 외칠 수 있는 근거가 거기에 생겼기 때문에요. 우리는 평화의 필요성과 평화에 대한 믿음과 무력으로서는 절대로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그런 인식을 도민들에게 확산시켜 가자, 그걸 위해서 거기에 센터도 짓고 했는데, 해군기지보다 우리가 먼저 지었습니다.(웃음) 강정마을 한복판에. 참 아이러니칼한 게, 문정현 신부가 명동사건 때 붙들려 들어가서 옥고를 치르셨는데요. 최근에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서 보상을 1억5천 받았어요. 그 돈을 받자마자 강정마을에 와서 땅을 덜커덕 사버렸어요. 그래서 저한테 와서 땅은 있는데, 위에 세우는 것은 주교님이 하십시오, 해서 우리가 교구 안에서 모금을 해서 짓게 되었죠.

: 이런 제주가 제주다움, 서울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런데 정말 제주야말로 평화의 섬으로 모든 걸 그쪽으로 맞춰서 가꾸어나가면, 오히려 지속가능한 발전이 될텐데, 자꾸 개발의 요소라든지 그런 제주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예. 이미 지난번 우리 신자가 중국인에게 살해된 사건을 통해서 그게 상징적으로 지금 제주의 현주소를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데요. 정말 그날 장례미사 때, 그 현장에 원 지사도 와 계셨고 해서 제가 일부러 이런 비극이 결국 살해를 직접 저지른 중국사람 한 사람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초한, 제주의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사방에 벌이고 사람들을 너무 많이 끌어들여서 그것을 정돈도 못하고 감시도 못할 지경으로 막 시장처럼 완전 시장바닥을 만들어놨으니까 이렇게 되는 것 아니냐, 말씀을 드렸죠. 제가 여기 온지 벌써 14년 됐는데요. 그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교구청 사무실 출근하는데 15분이면 딱 갔거든요. 지금은 30분 걸립니다.

: 두배 더 걸리는군요. 제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굉장히 매력도 함께 잃어버려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고 봅니다만.

: 제주가 국민들한테 사랑받는 게 결국은 자연이 옛날 모습을 가지고 있고, 또 제주다움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죠. 여기에 콘크리트 덩어리 리조트만 지어놓으면 육지 다른 리조트들과 뭐가 다르겠어요. 제주의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 제주의 고유한 자산을 모르더라고요. 그냥 어떻게 해서든지 투자를 유치해서 현대적인 시설들을 차려놓으면, 그게 발전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일이죠.

박원순 서울시장

: 제 고향이 경남 창녕이라는 곳입니다. 거기에 중학교까지 다녔었는데요. 부곡온천이라고 있어요. 한동안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렸죠. 하와이 부곡온천이라고 있는데요. 규모가 어마어마한 메머드 온천장인데, 지금은 완전히 썰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큰 시설에 하루에 몇 십 명 올까말까 하는 정도라고 해요. 그런 상황은 수안보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정말 지속가능한 경우를 보면, 일본의 작은 온천 같은 것은 아름답고 그래서 사람들이 변함없이 많이 찾곤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제가 여기 제주도에 공무원들 만나면 그런 얘기 합니다. ‘이탈리아에 한번 가 보십시오’라고요. 이탈리아에 세계적인 관광지 해안가 나폴리에서부터 북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고층 호텔들 같은 것은 하나도 없거든요. 다 옛날 집들, 고작해야 2층, 3층, 그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1년 내내 거기는 1년 전에 예약을 해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사랑받는 곳이라 합니다. 옛날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데. 다 밀어버리고 콘크리트로 그냥 초현대식 호텔들만 지어놓으면 절대로 오래 못 간다고 얘기를 합니다. 제주 상황을 돌아보면, 참 답답한 일이죠.

: 제주에 계시면서 더 잘 느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전국이 앓고 있는 몸살인 것 같기도 하고요. 주교님. 오늘 귀한 시간 내어 주셔서 좋은 말씀 들려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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