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

지난 가을부터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로 시작된 탄핵 촛불집회가 3월 10일, 헌법재판관 만장일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일단락되었다.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전국적으로 1600만 국민이 수십 차례 촛불을 밝혀 단 한 사람의 사상자 없이 통치자를 물러나게 한 것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동안의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생생하게 일깨워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었다. 4개월 남짓 진행된 촛불혁명은 세계역사에 기록될 시민혁명이요, 명예혁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국가에 살면서도 선거 때만 주인 노릇했고,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도의원들이 정치를 잘 해주기만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국민 전체를 생각하기보다, 소수만을 위한 국정을 운영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온 '최순실게이트'이다. 내년이면 정부수립 70년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0여년간 무한경쟁을 통한 양적 성장을 추구한 결과 세계최빈국에서 세계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점차 우리 사회는 돈이 최고이고, 돈이면 다 되는 천박한 사회로 바뀌어갔다.


안으로는 양극화, 일자리, 환경문제 등으로 사회갈등이 심각하고, 남북간에는 군사갈등이 첨예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극단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미국은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은 위안부와 독도문제로 역사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정부수립 이후 최대위기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지체할 수도 없다. 불가에 수행자가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던지는 자세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경지를 체험해야한다는 말이 있다. 위태롭고 어려운 막다른 위험에 놓인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촛불시민혁명', 간절하고도 절박한 자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요즘 '적폐청산'이 화두가 되고 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부패 청산은 어제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도 적폐청산을 위한 제2건국운동이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이라 한 바 있다. 지금까지 누적된 폐단을 청산하려면 국가 전반의 개조와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처한 난국을 풀어나가려면 누가 대통령이 되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복잡한 국내문제, 남북문제, 외교문제를 풀려면 국민의 지혜를 믿고 받들며 가야 한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대통령은 무지하고 무능하고 부끄러움조차 몰랐지만, 촛불 시민들은 집단적 지혜를 통해 정치인들이 잠시 흔들리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려 할 때 그들이 가야할 바른 길을 알려주었다. 이번 촛불집회는 수십만 수백만의 집단 지성은 어느 정치가나 정치철학자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정의롭고, 현명하며, 정치의식이 높다는 걸 보여주었다. 따라서 새로운 통치자는 국민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나라가 현재 어떤 상황이고 어떤 어려움에 있는지를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협조를 구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은 정치, 경제, 교육 지도자들이 지식이 부족하거나 철학이 부족해서가 아니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최소한의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열심히 노력해도 취업하기 어렵고, 30년 벌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들며, 상위 10퍼센트 계층이 66% 자산을 차지하고 하위 50퍼센트 계층이 2% 자산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열심히 노력하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리라.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