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박재하’를 경계함

마침내 드라마 ‘아줌마’가 막을 내렸다. 그동안 남편이랑 열심히 챙겨보던 드라마였는데 끝나고 보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렇게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며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들일 만한 드라마가 있을까 싶어서이다. 물론 아이들 대상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겨울 방학 동안에는 우리 네 식구가 모두 앉아 시청하곤 했다. 아이들도 처음엔 인물들의 코믹한 연기에만 관심을 갖는 듯 하더니 회를 거듭하자 나름대로 주변에서 ‘장진구’나 ‘오일권’같은 인물을 선별해낼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보람을 거두기도 했다. 모르긴 모르되 절대 ‘장진구’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얻었으리라고 내 나름대로 확신하기까지 했으니 드라마 하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무겁고 큰 것이다.‘아줌마’라는 드라마의 인기와 사회적 관심도를 반영하듯 각 신문이나 잡지에 다양한 평가와 소감이 종영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들을 접하면서 나는 우리 사회라는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아줌마’는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교수라거나 미디어 평론가, 여성운동가등이 쓰고 있는 드라마 평가를 보면서 역시 드라마 속의 ‘장진구’나 ‘오일권’이나 ‘박재하’가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역으로 그렇듯 많은 ‘장진구’나 ‘오일권’이나 ‘박재하’가 우리 사회에 버젓이 지도층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기에 ‘아줌마’라는 드라마가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장진구’에 대해 워낙 두 눈을 부릅뜬 사람이 많으니 새삽스럽게 나까지 칼날을 세울 필요는 없겠다. 대신 ‘장진구 못지 않게’위험한 인물로 생각되는 ‘박재하’경계론을 펼까 한다. 선량하고 마음약한 ‘박재하’가,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순애보의 주인공 ‘박재하’가 왜 위험한 인물이냐고? 모 대학교수는 얼마전 일간지에 쓴 비평을 통해 자신의 딸이 자신을 ‘박재하’와 비슷하다고 해서 안도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건 결코 안도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박재하’는 어떤 인물인가. 대중문화비평가라는 허울좋은 이름만 내걸었을 뿐, 문맥도 통하지 않는 글을 써대는 인물이다. 최고의 논객이 되기를 꿈꾸지만 책 한권 들여다보는 일이 없고 친구가 소개해줘야 간신히 발표할 지면을 얻는, 연줄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만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현실적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오일권’커플의 주식 대박을 한없이 선망하고 동경하는 대책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일권’을 경멸한다면서도 그에게 최고의 논객이 되는 방법을 묻는 그는 또다른 ‘장진구’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는 이런 부류의 비평가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허물을 덮기 위해, 자신과 상반된 입장을 가진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얄팍한 지식을 동원하는 ‘박재하류’비평가는 부지기수로 많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비평 대상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없이 단지 그것을 비평함으로써 지위 상승을 꿈꾼다는 것이다. 자신을 ‘장진구’가 아니라 ‘박재하‘와 비슷하다고 해서 안도했다면 그는 정말 위험한 수준의 교수 아저씨이다. 게다가 ‘오삼숙’을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하고 자립하는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목을 보면 그 교수 아저씨는 한번도 제대로 드라마를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확실하다. ‘오삼숙’은 ‘장진구’의 바람기 때문이 아니라 ‘장진구’의 위선에 가득 찬 인생에 자신과 자식들의 소중한 인생을 편승하여 살아갈 수 없다는 인식에서 이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습관처럼 해대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남편에게서는 도저히 인간적 진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오삼숙’의 분명한 입장인데도 그런 기본적인 스토리마저 무시한 비평을 쓴 그 교수 아저씨야말로 현장속에 뛰어든 일도 없고 책 한권 읽지도 않고 논객이 되겠다고 덤비는 ‘박재하’와 다를게 뭐 있는가 말이다. 그 딸이 보기는 잘 봤지 싶다.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는 ‘장진구표’는 낫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척 봐서는 잘 분간이 안되는 ‘박재하’표가 아닐까? 조선희/남군 표선면 토산리 제256호(2001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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