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18

지난 화요일 밤에 만난 두 여자는 신기하리만치 삶의 궤적이 닮아 있었다.

“좀 조용히 살고 싶었어요. 바쁜 삶을 접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살려고 제주로 왔어요.”

“어느 동굴 같은 데 들어가서 명상을 하며 살려고 지리산 주변을 열심히 탐문했어요”

숙경씨와 귀경씨 이 둘은 어릴 적 똑같이 문학소녀였고 지금 제주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아주 즐겁고 신나게 하면서 ‘희망’을 일궈내고 있는 것까지 매우 닮았다.

숙경씨, 그는 (주)제주 이어도 돌봄센터의 대표이사. 귀경씨, 사회복지법인 평화마을 대표, 이름에 ‘경’자가 들어가는 것도 닮았고 검은색 프리스타일 옷차림까지 닮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숙경씨는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검은테 안경, 귀경씨는 긴 파마머리에 호피문양 목도리. 그리하여 숙경씨가 선생님 이미지라면 귀경씨는 록밴드의 메인보컬 이미지.

귀경씨네 평화마을은 구억리에 있다. 30명의 발달장애인들이 수제 소세지를 생산하고 있는데 최고의 기술자라는 자긍심이 짱짱하다고 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뜻에서 상표가 제주맘인데, 어찌나 품질이 좋은지 소세지로 유명한 독일에서 무려 6개의 금메달을 따냈다고 하니 그 자긍심이 결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야생의 엘자>라는 영화를 보고 엄청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영화는 나도 보았다. 원제목은 <본 프리(BORN FREE, 자유롭게 태어난>이다. 아프리카의 한 부부가 고아가 된 새끼사자를 키우다가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하는 감동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이웃들이 사자를 빨리 동물원으로 보내라고 빗발치듯 항의하니까 부부가 고민에 빠져요. 결국 결정을 하죠. 동물원이 아니라 야생으로 보내기로. 그 결정의 결정적 대사가 ‘모든 생명은 자유롭도록 태어났다’였어요.”

귀경씨는 ‘자유’라는 단어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훗날 간호사를 거쳐 사회복지사가 되면서 “그래, 장애인들도 시설에 수용되어 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야, 그들의 잠재력이 다 발현되고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게 돕는 것이 진정한 사회복지”라 다짐하게 되었다. 평화마을이 굳이 발달장애인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모두가 자유로운 생명체이고 독자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장애인이라는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 이다.

숙경씨네 이어도돌봄센터는 돌봄노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우리 사주로 만든 주식회사이다.

“지적 장애 부부가 출산을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아기를 잘 돌볼 수가 없는 거예요. 토일을 쉬고 월요일에 돌봄선생님이 가보니 엄마는 젖이 넘쳐 옷이 다 젖은 채 비린내가 진동하고 갓난아기는 이틀을 굶은 거예요. 선생님이 부부를 도닥이며 잘 설득해서 아기를 영아원에서 키워 좀 자라면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했어요. 그 선생님의 진심어린 사랑이 한 가정을 지킨 거예요. 이것이 진정한 돌봄인 거죠. 또 다른 선생님 한분은 자신이 돌보던 장애인이 말문을 트는 기적 같은 일을 보여주셨어요. 특별한 교육을 받은 바 없는데도 말예요. 우리 선생님들 참 대단해요.”

이어도의 선생님들도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자유는 이렇게 사람들을 당당하게 하고 그당당함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기적은 당연히 평화마을에도 있다.

“이십년 동안 함께 한 직원이 있는데, 처음 면접 때부터 착석이 되지 않는 심한 자폐증상을 보였어요. 공장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튀어나가서 쫓아나가는 게 일이었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서 안정이 되어 얼마 전부터는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니, 요새는 아기 낳아 기르고 싶다고 해요. 30대 여성으로서 보편적인 욕구를 스스로 표현하게 된 거지요”

그렇지만 부모도 아니고 생판 남인데 이런 친구를 어떻게 직장에 고용할 수 있었느냐는 내 물음에 ‘어떻게 그냥 돌아가게 하느냐’고 웃으며 반문하는 귀경씨, 그리고 스스로를 ‘근로빈곤층’이라 말하며 행복하게 웃는 숙경씨, 이들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선배 한 분이 ‘거름이 되는 삶을 살자’고 늘 말했어요. 내가 지금 열매가 되려고 하는 건 아닌가를 스스로 돌아봅니다.”

퇴비를 보면 푹푹 썩어야 좋은 거름이 되니 이들은 얼마나 많이 푹푹 썩은 것일까. 이들의 웃음은 완전히 썩은 거름의 향기일지도 모른다.

파라다이스를 의미하는 이어도와 평화마을, 이 둘은 닮은 이름, 닮은꼴이다. 숙경씨와 귀경씨가 닮은 것처럼. 나도 이들을 닮고 싶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우는 것”이라는 귀경이라는 휴먼북, “죽을 때 네가 내 친구여서 고맙고 행복했다는 말을 나누는 게 소원”이라는 숙경이라는 휴먼북, 그 삶이 책이 된 두 여자를 만나서 많이 배웠고 고맙고 행복했다.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