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 제주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지난해 12월 28일, 제주현대미술관은 앞으로 미술관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밑그림을 발표했다. 이른바 <제주현대미술관-비전 2017>이 그것이다. <제주현대미술관-비전 2017>은 제주현대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미술관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 미술관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논의의 출발점이다.

설립된 지 10여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를 가진 국내 공립미술관들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 중에 하나는 미술관을 과시용이나 단순한 전시공간쯤으로 인식하는 설립 주체들의 이해부족과 뚜렷한 비전 없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운영방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 근원적 문제를 들여다보면 미술관 설립 시 촘촘한 환경분석, 충분한 논의, 명확한 비전  제시가 선행되지 않고 성급하게 하드웨어적인 미술관 건립에만 서둘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술관의 전시기획, 소장품수집, 교육프로그램 등을 계획하고 실현하는데 있어서 혼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미술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술관은 지역의 역사와 장소성, 도시환경을 포괄하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주요한 문화기반시설이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정교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스페인의 대표적 공업도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나 일본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 같은 경우, 쇠락하던 지역을 완벽하게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데 미술관이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긍정적인 사례들로 꼽히고 있다.

 21세기를 ‘문화산업의 시대’라고 할 때, 문화는 전 지구적인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공적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국․공립미술관이라고 하더라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없다면 국제 경쟁력 속에서 미술관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선포한 제주현대미술관 비전은 이러한 측면에서 유의미한 일이다.

 이번에 발표한 제주현대미술 비전의 골간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 현대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특색 있는 미술관 육성”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위 목표로는 첫째, 자연생태와 예술을 융합, 창의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생태미술 중점 미술관, 두 번째는 첨단과 창의적인 현대미술을 실현하는 미술관, 셋째로 서부권역의 문화기반 중심 미술관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그 아래 세부적인 추진방법으로 생태미술관 기반조성 사업과 기획전시, 소장품 수집, 교육프로그램, 주변 지역과의 연결사업, 홍보전략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미래비전으로 현대미술관이 생태미술 중심의 미술관을 표방하는 것은 미술관이 위치한 곶자왈 저지리의 생태적 환경과 시대성, 미래의 확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 문제는 확대되고 있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제주의 현안문제이자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아닐 수 없다.

 현대예술은 점점 더 사회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소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미술관은 이러한 소통의 매개자로서 역할들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점에서 현대미술관의 미래비전은 결국 지금 지역에서 충돌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어떻게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담론을 생산하고 창작의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또 지역의 예술정책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조종자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으로 변화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제주도는 타 지자체에 비해 많은 수의 공립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개관한 김창렬미술관을 포함해서 총 7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미술관들이 서로 간섭되지 않도록 포지션을 정확하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또 유기적으로 미술관들을 연결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개선과 정책을 만들어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을 더 명확하게 가다듬어야 하고 또 서부권의 중추적 문화기관으로서 역할,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융합하며 지역예술가들과 시민의 소통공간으로 충실히 거듭나기 위한 실천사항들은 앞으로 더 세부적으로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