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구이동에 따라 형성된 화산체, 용머리 응회환

용머리 화산체.

산방산에서 바로 남쪽 해안을 바라보면 바다로 돌출된 능선이 보인다. 그 모양이 마치 용의 머리가 바다로 나아가려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용머리라고 부른다. 용머리는 화산재를 비롯해 화산쇄설물들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도넛 모양의 응회환이 파도에 그 동쪽 대부분이 유실되고 그 일부만 남은 것이다.

용의 형상과 고종달의 설화

용을 닮은 그 기이한 형상 때문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산방산에 왕후지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진시황이 풍수에 능한 고종달을 보내 그 맥을 끊었는데, 바위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산방산은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내용이다.

자연은 오랜 시간에 걸쳐 물과 불을 빚어 이곳에 용의 형상을 짓고, 파도와 바람을 사용해 깍고 다듬어 다채로운 문양을 새겼다. 선과 면을 자르고 붙인 듯 구석구석에 요철을 새겨 놓은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경상대학교 손영관 교수는 지난 1995년에 용머리해안을 조사해 <제주도 용머리응회환의 구조와 층연속체 : 이동하는 화구로부터의 순차 퇴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용머리해안이 생성될 당시 응회환의 퇴적 및 침식이 진행된 방향을 분석하고, 화산활동이 일어날 당시에 폭발이 자리를 옮기면서 일어났다는 것을 밝혔다. 용머리 응회환의 형성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텍스트라 이를만하다. 서귀포시는 최근에 용머리 입구에 표지판을 세워 방문객들에게 화구 이동을 설명하고 있다.

용머리 응회환이 형성되기 전 이 일대는 얕은 물가였다. 주변의 산방산과 형제섬도 만들어지기 전이다. 그런 어느 날, 해저 지하에서 마그마가 솟아오르며 바닷물을 뜨겁게 가열했다. 마그마와 접촉한 물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며 화산재(입자의 지름 2mm 이하)와 자갈(입자의 지름 2~32mm)과 화산암괴(입자의 지름 32mm 이상) 등을 쏟아냈다. 폭발이 일어날 때, 입자가 작은 화산재는 비교적 멀리까지 날아가지만, 입자가 큰 화산암괴는 화도와 가까운 곳에 퇴적된다.

용머리 응회환이 파도에 침식되면서 당시 화산쇄설물에 들어있던 입자들이 노출됐다.
가까운 지역에서 사층리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손영관 교수는 용머리 응회환이 형성될 당시 폭발이 일어난 화구의 위치가 바뀌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밝혔다.

화도를 뚫고나온 화산 쇄설물은 수증기를 흠뻑 머금고 있었다. 화산쇄설물은 수증기가 응결된 물방울, 하늘에서 내린 비 등과 뒤범벅이 되어 분화구 주변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렸는데, 이를 화산쇄설류라고 한다. 이때 흘러내린 화산쇄설류는 퇴적층 위에 비스듬한 줄무늬를 만들었는데, 이 줄무늬를 사층리라 한다. 화산쇄설류가 화도 중심에서 경사면을 따라 흘러갔기 때문에 용머리 응회환에 새겨진 줄무늬는 화산쇄설류가 흘러간 방향을 지시한다.

이동하는 화구가 만든 미스터리한 줄무늬들

가로줄무늬의 경사각이 서로 나란하지 않은 구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화산쇄설류가 흘러내려온 방향이 변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화산쇄설물이 화도 주변에서 사면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같은 지점 위를 흘러간 화산쇄설물의 이동 방향이 변했다는 것은 화산폭발이 일어난 화도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처음 폭발이 일어나고 물기를 머금은 화산쇄설류가 사면을 따라 흘러내렸는데 화도의 위치가 바뀌면서 다음 폭발이 일어났다. 화산쇄설류가 이미 쌓여있는 사면에 새로운 흔적을 더했다. 화구의 위치가 변했기 때문에 화산쇄설류가 남긴 사층리의 방향도 변했다. 손 교수는 이런 자료들로부터 용머리 응회환은 화도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의 순차적 화산폭발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구의 이동이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용머리 응회환은 산방산 앞으로 길쭉하게 돌출된 작은 곶에 불과하지만, 처음 생성될 당시에는 지금의 산방산 바닥은 물론이고 이 일대 전역을 뒤덮을 만큼 큰 규모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응회환이 파도에 침식되어 남쪽으로 길쭉하게 일부만이 남아 있다.

산방산과 용머리 사이에는 사계리에서 화순으로 향하는 해안도로가 놓여있다. 지금은 낙석의 위험 때문에 다시 이 도로 남쪽에 새로운 도로를 만들고 있다. 도로를 만들며 절개된 부분을 들여다보면 산방산과 용머리 응회환의 선후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산방산 용암돔의 맨 아랫부분에서 용머리 응회환에서와 같은 화산쇄설암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용머리 응회환이 먼저 형성되고 그 위를 산방산 조면암이 관입했다는 증거가 된다.

산방산 용암돔이 형성된 것이 약 80만 년 전의 일이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용머리 응회환은 80만 년 이전에 형성됐고, 제주에서 만들어진 화산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제주경실련, 자연경관을 걱정한다지만...

용머리 화산체는 주변 산방산과 형제섬, 송앙산과 어우러져 제주도 서남부의 주요 관광자원으로 인정받았다. 용머리지구는 지난 1971년, 안덕계곡(용머리)관광지로 지정이 된 후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94∼2001)에 의해 용머리관광지로 지정됐고, 관광지 활성화와 지역 주민의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개발사업이 진행됐다.

제주자치도는 지난해 10월, 용머리 관광지 조성사업을 변경한다고 고시했다. 사면 붕괴가 발생된 해양수족관 부지의 활용방안을 검토하고 인근 지역에 비하여 낮은 밀도와 특정 용도로 규제되어 온 건축물의 용도를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관광지 개발을 활성화시켜 지역 주민의 참여를 높인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는 용머리 서북쪽 숙박부지 지역에 용적률을 25%에서 30%로 늘리고, 고도를 9미터(2층)까지 완화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제주경실련은 지난 15일에 성명을 내고 제주도의 결정을 비판했다. 경실련은 “제주도가 40년 이상 건축행위를 불허하며 보존해왔던 지역은 개발을 대폭 허용했고, 3차례 주민설명회에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지역을 용도변경해 운동오락시설로 지정했다”고 비판했다.

용머리 입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바이킹 시설. 양모 전 경실련 대표가 운영하는 사업체다. 경실련은 최근 용머리 관광지구 변경안으로 조성될 운동오락시설이 경관을 망칠 것이라며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경실련은 “운동오락 인공구조물 수립계획은 용머리해안과 약 30m 거리에 위치해 있어 용머리해안의 자연자원을 망친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제주의 자연자원을 잃고 용머리해안 주변 주민들의 생활권까지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의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운동오락 인공 구조물 시설과 관련한 내용을 성명에 포함시킨 것은 생각해볼 대목이다.

현재 용머리 진입로에 영업을 하고 있는 ‘바이킹 시설’은 양모 전 제주경실련 대표가 지역 주민의 토지를 임차해 시작한 사업체다. 업체는 손님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노래를 크게 틀어놓는데,  시설이 관광객들에게 혐오감을 줄 뿐만 아니라 산방산 조망을 크게 해친다. 이를 그냥 놔둔 채 운동오락시설이 경관을 망친다고 주장하는 게 이치에 맞기나 한가?

시민운동은 활동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 일반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성명을 내기 전 자신을 먼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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