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김진웅 / 프리랜서·전 <제주의 소리> 기자

 파란의 파란. 대한민국을 관통한 바람이었다. 한 사회학자는 6·12 세기적 만남과 6·13 지방선거를 ‘올드 보이 민주주의의 폐막’이라 불렀다. 사실 오늘날 진보는 70년 간 억눌려온 ‘극우’의 반대 프레임으로 과도하게 진행돼 온 측면이 적지 않다. 이번 선거가 ‘현실적 민주주의의 개막선언’이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있게 들린다.

제주판 적폐 프레임과 진보정당의 약진

 전직 두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파란 바람의 심판은 유독 제주에서만 멈췄다. 제주지사를 5번이나 역임한 우근민 전 지사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던 ‘제주형 적폐론’이 적지 않은 힘을 받은 탓이다. 이른바 ‘조배죽’으로 불렸던 소수의 토호세력과 민주당 도지사 후보간 결탁설은 곧 후보의 도덕성 논란과 맞물리며 커다란 표심 변화를 가져왔다.

 한때 60%까지 달했던 민주당 지지율은 ‘이반 현상’이 나타나며 무소속 원희룡에게 30%의 민주당 지지세를 보내주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도의원 후보 선택을 통한 민주당의 압승은 여전히 대통령의 국정추진 동력에 힘을 실어주려는 민심이 상당부분 작용했다.

 지역구로 이사 온지 몇 년 되지 않은, 인지도 없던 민주당 후보가 마을토박이 자유한국당 후보를 밀어낸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거대 후보 대결구도에서 피어난 눈부신 진보정당의 약진이다. 녹색당 고은영 도지사 후보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보수 후보를 제치고 3위를 기록했으며, 도민 5명 중 1명이 진보정당을 선택했다.

 보수색채를 채 벗지 못한 도지사의 능력을 선택한 대신 민주당과 진보당을 지지하는 절묘한 혜안을 제주도민은 보여줬다. 이같은 표심은 앞으로 전개될 선거의 나침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진영논리와 2분법의 종언

 철 지난 종북프레임을 고집했던 자유한국당이 ‘묻지마 국정 반대’로 몰락을 자초했다면, 제주 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의 ‘묻지마 후보 지지’로 도민들의 거부감을 불러왔다. 이는 정당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인물이 따라주지 않는 후보에게 무조건 표를 줄 수 없다는 제주특유의 표심이기도 하다. 제주가 늘 선거 표심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이유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의 승리라고 말하지만 이는 곧 70년 냉전을 허문 대통령의 힘이었음을 부인키 어렵다. 투명·공정·정의를 내건 정부 기조와 더불어 한쪽 진영의 축을 크게 받치고 있던 안보가 변화하면서 진영 논리도 빠르게 무너진 탓이다.

 이번 선거는 그러한 흐름의 과정을 보여줬다. 어쩌면 이번 선거를 통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진보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계기도 됐다. ‘진보’와 '적폐청산'을 말하면서 오히려 ‘내부청산’을 원하고 ‘진보성을 지닌 도민'과 교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품격있는 보수와 진보 사이

 국민의 마음을 얻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도민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대통령은 보수일까? 진보일까? 평화를 추구하고 국정을 안정시키는 현 대통령은 일단 믿음직스럽고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 국정 안정론에 기초한 대통령의 모습은 민주당이지만 일견 ‘품격있는 보수’로도 읽힌다. 민주당에 지지를 보낸 것은 70년 냉전을 녹여내는 대통령, 노벨상 보다 ‘평화’를 선택하겠다는 대통령의 참매력과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참된 보수는 원래 ‘구시대’, ‘낡은 시대’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며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대통령이 지켜내려는 ‘평화’는 그런 점에서 보수의 발자취와 맞아 떨어진다. 어쩌면 ’품격있는 보수’가 진보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대통령이 ‘품격있는 보수’가 되면 자연히 민주당은 진정한 ‘보수 정당’이 될 것이다. 보수가 ‘가진 자의 지키려는 속성’으로 볼 때 이미 민주당의 보수화는 진행 중이다. 그러면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 제대로된 진보 정당들이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부상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와 이념, 진보와 보수란 진영논리 대신 관통했던 주제는 서민·경제·인물·능력 등으로 표현된 민생(民生)이고 민본(民本)이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2020 총선을 맞아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에 이은 이번 선거는 반성없는 부역세력에 대한 양심(良心)의 심판 성격이 짙다. 양심을 ‘당심’과 ‘Fan心’으로 오도(誤導)할 때 언제든지 민심은 배를 뒤집는다.

 2년 후 예고된 총선 역시 민심을 어떻게 읽고 가느냐에 달린 이유다. 따라서 참된 진보 역시 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품위 있는 보수’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진보가 보다 설득력을 가지려면 성향이 다른 이들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열린 진보’의 길로 나가야 한다. 인간의 생각만큼이나 정치의 스펙트럼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 시대. 도민을 위한 ‘참진보’, ‘참보수’의 항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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