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숙 / 제주대 교수·독문학 박사

 올레 길을 걷거나 동네 오름에서 산책을 하다보면 뜻밖에도 반갑지 않은 시설물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바다와 산, 오름과 시골 마을 가릴 것 없이 크고 작은 정자와 시비(詩碑)가 서 있다. 자연스럽게 돌출한 해안의 풍광위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정자를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당황스러워진다. 이런 설치물들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자 안에는 소주병과 찌그러진 맥주 캔, 담배꽁초가 널려 있다.

 이웃 마을의 해안로에도 마찬가지다. 바다의 정자는 쉼터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잠시 앉아 술을 마시는 간이주막 같은 느낌이다. 이쯤하면 왜 이 멋진 바닷가에 정자를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바다의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자하는 아이디어를 냈을까?, 하는 의문도 들기 시작한다.

 아담한 벤치 하나면 충분한 것을 그 많은 돈을 들이며 정자를 짓는다? 아니 벤치도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바위 위에 앉으면 어떤가? 제주 바다를 찾는 사람이라면 바다를 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길가에 의자 하나면 쉼터로 족하다.

이번에는 오름으로 가 보자. 그 작고 정겨운 오름에는 인공물이 없어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 그 오름에서 신년 행사가 있었고, 다음 날 오름을 올라보니 시비(詩碑) 하나가 세워져 있다. 개인 취향의 시를 왜 그곳에 기념비처럼 세워 놓았는지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개인의 일기장에 비밀스럽게 써 두면 좋았을 걸... 그 작은 오름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정자와 시비가 세워져 있었고, 특히 정자는 오름에서 제주시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조망을 고스란히 뺏고 말았다.

 한 장소에는 그 장소만의 브랜드 가치가 있다. ‘다른 것과 비교되는 가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브랜드 가치는 무엇일까? 제주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의 가치일 것이다.

 제주의 브랜드를 결정하는 것은 타 도시와의 ‘다름’이다. 제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 그리고 시민들이 제주라는 공간을 관찰자로서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제주만의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을 가미하더라도 매우 절제된 인공물이어야 하며, 절제의 미학을 반영할 수 없다면 애초에 짓지 않는 것이 낫다.

 아득한 자연의 역사를 이루어 온 영겁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결코 어중간한 인공구조물이 제주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관찰자의 시각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제주의 브랜드 가치가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이 훼손된 마당에 제주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을까? 제주의 브랜드를 갖추려면 제주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모습을 삼켜버리는 구조물의 설치나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한 색깔, 편의와 실용의 시각에서만 자연을 바라본다면 제주는 서서히 그 가치와 매력을 잃어갈 것임이 분명하다.  

 자연의 모습을 덮는 구조물을 설치할 때에는 정말 그 작업이 유의미한 일인지, 지속적으로 그런 시설이 필요한지, 시민과 여행자들이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제주가 지닌 고유의 정신과 자연을 해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하여 날카로운 시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제주가 많이 ‘짓고’ 많이 ‘설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앞으로 제주는 자연이라는 브랜드를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복구는 불가능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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