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서귀포를 사랑하는 사람들(1) 춤神 홍신자

"8월 10일과 17일, '시니어 무용단' 창단 위한 몸·마음 워크숍 설명회 열겠다"

구도의 춤꾼 홍신자

 그의 이름 앞에는 현대무용의 전설, 구도의 춤꾼, 보컬리스트, 베스트셀러 작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현대무용가이며 안무가, 전위예술가, 명상가인 홍신자(洪信子, 78). 구도의 길에서 춤神의 경지에 오른 그가 서귀포시에 둥지를 튼다.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홍신자는 8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주도가 좋아서 특히 서귀포에 필이 꽂혀 서귀포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춤神 홍신자는 “원래 섬을 무척 좋아해요.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의 삶터 조건으로서 기후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도 좋아야 하고. 공연을 위해, 수련과 구도 차, 혹은 여행 삼아 세계 곳곳 다녀오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 어떤 데와 비교하더라도 서귀포만큼 아름답고 정겨우며 힐링 자체인 곳은 없다고 봐요. 너무나 인상적인 곳이죠”라고 말한다.

 “서귀포시와 특별히 맺어진 인연은 없으나 휴가 때나 공연, 워크숍 참석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다녀가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송악산에서 김금화 선생의 기원굿과 함께 펼쳤던 퍼포먼스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요” 제주에는 오고 싶을 때마다 찾아오곤 했다. 특히 7년 전인 지난 2011년에 한국학 권위자이며 화가인 한 살 연하 베르나 삿세와 세계적인 퍼포먼스 결혼식을 돌문화공원 하늘연못 일원에서 펼치면서 ‘제2고향으로서 제주, 삶터로서 서귀포’로 이미 마음이 기울었다고 한다.

▲ 한국학 권위자이며 화가인 독일인 베르너 삿세와의 결혼식 풍경.

 인도 명상의 대가인 오쇼 라즈니쉬와 니사르가닛따 마하라지에게 사사받은 춤神 홍신자는 명상가이기도 하다. ‘제1회 홍신자 춤명상 축제’의 서막을 연 곳도 바로 송악산과 저지리 예술인마을 현대미술관이라는 점은 인연의 깊이를 말해준다. 올해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작 ‘Mirror 거울’ 역시 그 의미가 무척 큰 무대였다.

▲ 서귀포예술의전당(2017.12.17) 대전예술의전당(2018.5.31)에서 열렸던 '거울' 공연 포스터

 이미 지난해 서귀포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 서귀포시민들과 만났던 작품이어서다. 하지만 같은 주제의 공연이라도 매번 다른 춤사위를 펼치기 때문에 꼭같은 공연은 아니다. 군더더기없는 춤사위와 시각적으로 담아낸 삶에 대한 철학적 주제, 또 거울에 비치는 모습 너머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는 작품이다. 나를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오래된 미래’를 향한 몸짓이다.

 춤神 홍신자가 처음에 춤을 시작한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타고난 끼’ 때문이라 회상한다. 잠재적으로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무엇보다도 충분히 창조적인 재능까지 갖추고 있음을 스스로 느꼈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소질을 남들에게 드러내 보여줄 만한 기회가 없어서 묻혀 있었다고 말한다.

 홍신자는 만 26세 나이로 늦게 데뷔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66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에서 호텔 매니지먼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자신이 공들여서 공부할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진즉 알아차렸다. 인생에 대한, 특히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공연예술을 찾아 순례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운명적인 춤 공연을 만나게 된 것이죠. 바로 알윈 니콜라이(Alwin Nikolais) 무용단의 공연이었는데 내가 보기에 그 공연은 ‘한없이 자유로운 춤’이었어요. 그때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춤을 추고 싶다, 춤을 춰야 되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되었는데요. 그때부터 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처음에 무용학원의 문을 두드렸을 적에는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끈질김과 성실성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설득하면서 배움의 길을 열었다. 그리곤 운동선수 같은 연습벌레처럼 춤을 추고 또 추었다. 그러면서 춤에 맛들이고 자신의 소질과 끼를 발견하게 됐다. 1973년, 뉴욕댄스시어터 워크숍에서 ‘제례’ 공연을 통해 안무가 겸 무용수로 데뷔했다. ‘제례’ 공연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당시 무대 ‘제례’는 내 자신이 녹아든 작품이었죠. 일종의 치료과정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요?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의식은 물론 늘상 표현해내고 싶었던 영역들, 내 안에 쌓여 억눌려서 뭉쳐있던 모든 것이 첫 작품인 ‘제례’에 그대로 믹싱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하거든요”

▲ 첫 작품 '제례(mouring, 1973)'

 ‘제례’를 통해 한국여성으로서 1940, 50년대를 살아가며 느낀 억눌림, 전쟁의 비극과 같은 응어리들에다 한국적인 제의식을 가미해 한꺼번에 그 내면을 표현해냈다고 할 수 있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한 1970년대는 험한 세상이었다. 예술적인 끼를 발휘할 수 없을만큼 검열이 심했으며 그만큼 제약이 컸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마음껏 춤의 나래를 펼치면서 춤의 세계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상에 서게 되니 무용에 대한 도전이 끝나버린 듯한 무력감, 허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쯤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안고서 명상의 메카 인도로 가게 됐던 것이라 한다. 그곳에서 3년동안 오쇼 라즈니쉬와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제자로 있으면서 구도의 길을 걸었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다시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면서 당시 전위예술가로 명성을 날리던 존 케이지와 백남준 선생 등을 만났다. 이러한 조우에 대해 홍신자 선생은 “너무나 큰 기쁨인 동시에 커다란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 구도의 춤꾼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 북콘서트가 2016년 5월 25일 서귀포시 소재 왈종미술관에서 열렸었다..

 구도의 춤꾼 홍신자의 자유롭고 파격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 「자유를 위한 변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영구 귀국해 사단법인 '웃는돌'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 연극의 대모인 뉴욕 'La Ma Ma' 극장 창시자 엘렌 스튜어트는 홍신자를 가리켜 ‘100년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무용가이다’라 극찬한 바 있다.

구도의 춤꾼 홍신자는 서귀포에 살면서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그런 춤神 홍신자 선생은 서귀포시에 둥지를 튼다. 서귀포시 어르신들을 위한 ‘서귀포 시니어 시어터’ 무용단을 창단해 행복한 서귀포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생각이라고 한다. 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함께할 수 있다. 서귀포시 어르신들 모두가 나이 들면서 갖게 되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멋진 인생, 항상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을 함께 추구하고자 한다. 춤과 명상을 배우려는 어르신이라면 어떤 분이든지 대환영이다.

* 홍신자의 <서귀포시니어무용단> / <몸·마음 워크숍>설명회
1차 8월 10일(금), 2차 8월 17일(금) 오후3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1층 휴게실. 문의 : 010 2245 2095(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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