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가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허가했다. 원 지사는 도민과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 ‘조건부’라는 전제를 붙였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과로 한정하고,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며 외국인 관광객 의료관광객 진료만을 허가한다는 입장이다.

원 지사는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열거했다, 중국과의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행정 신뢰도가 추락하며 사업가의 소송 등으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병원에 취업한 직원 134명의 고용 문제와 동홍동·토평동 주민들의 개설요구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수 후 비영리 병원으로 운영하려 해도 최고급 병실 등 현재의 시설은 프리미엄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위한 의료·휴양시설 외에는 활용 불가하다고 했다.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설을 허가해야할 이유들이 산적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 지사의 구구절절한 변명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다.

원 지사는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우려했지만, 중국과의 외교문제는 이미 사드문제로 파행의 길을 걸은 지 오래다. 원 지사는 중국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우려를 표한 적이 없더니 조그만 병원 개설과 관련해 외교문제를 거론하는 건 너무 옹색하다.

행정의 신뢰도를 걱정한다는 말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지난 2016년 국정농단에 반기를 들고 촛불혁명을 완성한 일은 전 세계인이 극찬하는 일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은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을 시대적 과제로 상정했다. 영리병원 추진은 과거 국정농단 세력이 남긴 대표적인 적폐사례다. 이를 청산하는 일로 행정에 신뢰도가 추락할까?

병원에 고용된 134명 직원들의 생계와 핼스케어타운 조성에 토지를 제공한 주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원 지사는 병원을 단 한 차례 둘러보고 비영리 병원 운영에 적합하지 않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의견을 듣거나 녹지국제병원을 둘러보는 일은 병원 개설을 허가하기 위해 벌인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원 지사는 잘못된 결정을 번복하고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불허해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도민의 건강을 한꺼번에 파괴한 마지막 적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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