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소장.

주말에 가을 옷을 입고 제주공항을 떠났는데 오늘밤의 제주공항은 겨울의 언저리라 그런지 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옷깃을 여미면서 바람을 물리치고 나니 조금은 따스한 느낌입니다. 엄마가 계신 그 곳도 바람이 불어 낙엽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저 먼 산언저리 즈음에 붉디붉은 단풍이 드는지요. 저희들 키우실 적 그러했듯이, 엄마를 떠나보내고 이제야 저희를 돌보신 엄마의 마음이 되어 추울 때면 혹 추우실까, 더울 때면 혹 더우실까, 비 뿌리고 눈 내리는 날이 되면 누우신 자리가 편안하실까 되돌아보는 마음이 됩니다. 너무나 뒤늦은 깨달음이지요.

세월이 물과 같다 하더니 엄마를 떠나보내고 훌쩍훌쩍 한해 두해가 갑니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건만 이제는 딸의 품안에서 눈웃음을 치고 있는 손녀를 보면서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엄마가 떠나고 점점 줄어드는 장독대 안의 된장과 고추장을 들여다볼 때면 마음속에 싸한 바람이 지나고, 초밥 집과 냉면집 간판만 스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 저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애절한 그리움으로 저기 먼 곳에 있는 엄마를 느낍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육십의 젊디젊은 나이를 접어두고 홀연히 가셨는지 원망스럽다가도 주름살 하나 없이 편하디 편한 마지막 모습과 희디 흰 가녀린 손가락을 떠올리면 이제야 편히 쉬는 것만 같아 마음 한편이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긴긴 겨울 깡마른 몰골이라 동네 산보가 싫다면서 무거운 걸음으로 거실을 돌던 모습이며, 엄습하던 통증을 이겨내느라 허벅지를 쥐어뜯던 모습, 행여 냄새라도 새어나갈까 손으로 가리면서 토악질을 하던 하얀 얼굴을 떠올리면 이제는 너무 세월이 흘러 그런가요, 아니면 슬픔이 너무 빛바래 옅어져 그런가요. 스러져가는 줌아웃의 화면처럼 엄마가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들 기억 속에 육십 평생을 그러했던 것처럼 엄마는 말끔하고 깨끗하게, 고운 모습으로 남기를 원했던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수술 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내가 너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어이구야...’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던 그 모습에 그리도 큰 병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고 서른을 훌쩍 넘긴 딸은 병원밥 마다하고 엄마의 진수성찬 도시락을 받아먹었으면서도 정작은 엄마의 병석에 더운 죽사발 그릇 드리지 못했던 불효는 어찌할는지요. 돌아가시고 언니가 유품정리를 하면서 상표도 채 뜯지 않았던 구두 한 켤레를 건네며 크리스마스 무렵 엄마 혼자 명동 다녀와서 ‘나 신발 샀다’하면서 보여줬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위어가던 엄마가 홀로이 명동거리를 거닐면서 힘들게 신발 고르던 모습을 떠올리니 왜 그리 가슴이 미어지던지요.

돌아가시고 삼우제에 가면서 엄마가 살아생전 좋아하던 꽃이 뭐였는지 딱히 떠오르지 않으면서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딸이 아니었단 회한에 어찌나 송구하던지 몸 둘 바 모르던 딸은 세월이 그리도 흘렀건만 지금도 가끔 엄마의 부재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머나먼 제주에서 딸의 출산 후 어미 노릇과 손녀의 눈웃음 그리고 주먹 쥔 손을 영상통화로 보면서 이제야 할미된 마음을 느끼면서 저희 딸 넷의 출산 뒷바라지에 마를 새 없던 그 손길이 생각납니다.

오히려 떨어져 있으면서 더 그립고 더 절실합니다. 저희들을 살아생전 거두었던 그 모습 그대로 저 하늘 어딘가에서 저희를 이끌고 있음을 믿고 싶습니다. 막내의 꿈에 가끔 나타나 ‘나 이제 편하다’고 웃던 밝고 평온한 모습 그대로 저희를 지키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제 바람이 매서운 제주의 겨울입니다. 비 뿌리고 단풍 진하던 집을 뒤로 하고 나뭇잎 푸른 제주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주말을 딸과 손녀와 지내면서 모녀 삼대가 까르르 거리던 그 시간도 이제 어제의 일입니다. 돌을 앞둔 손녀에게 이유식을 떠먹이던 딸의 저린 손끝이 떠오르면서 엄마에게서 저에게 또 다시 딸에게 이어지는 내리사랑을 기억합니다. 다시 봄이 올 것이고 새순은 돋고 들판에 꽃이 피겠지요. 어디에 계시던 엄마의 사랑이 저와 딸과 손녀를 보듬을 것입니다. 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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