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정부와 해군의 의도대로 연말착공을 목표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지사 주민소환 무산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해군기지 항만공사 설계계획과 강정주변 종합발전계획 등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주도권을 빼앗긴 제주도가 최근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실시했으나 졸속심의 논란에 휩싸이며 시민사회단체가 재조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변호사단체 등 일각에서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법적 절차 준수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한 지원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도민 공감대 없이 추진해 온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종착역을 앞둔 시점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2년 4개월에 걸친 제주 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해군기지 문제의 최대 이해 당사자인 강정 주민들의 갈등 해소방안이다. 강정 주민들은 이미 두 조각으로 쪼개졌음에도, 여태껏 누구 하나 주민화합을 위한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서귀포신문이 지난 4회에 걸쳐 보도한 <찢겨진 강정, 희망은 있는가?> 기획에서 드러난 강정 주민들의 참상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매우 심각했다. 주민의 40% 정도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전문가들이 우려할 수준의 우울과 강박장애, 불안, 적대감 등에 시달리고  있다.강정 주민들이 이토록 심한 ‘마음의 병’을 어디에도 호소할 길 없이 가슴에만 처박혀 왔다니, 같은 도민으로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도민들은 해군기지 찬성이냐 반대이냐에 관심을 갖고 논쟁을 벌였을 뿐, 당사자인 주민갈등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정부와 해군, 제주도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국책사업 추진에만 열을 올렸지, 주민들의 고통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심리적 공황상태인 강정 주민들은 정작 해군기지 지원규모엔 별 관심이 없고, 한순간에 적과 동지로 갈라선 시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고 있다. 

며칠 전 주민소환 정국과 관련해 도지사가 승자와 패자가 없다고 밝혔듯이, 해군기지 문제 역시 승자와 패자 없이 도민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십자가인 셈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경제여건에서도 ‘느영나영’ 화목하게 살아온 제주사회가 우리이웃 강정 주민들의 피와 눈물이 가득 고인 강정 앞 바다에 해군기지를 세울 수는 없다. 

비록 두 동강으로 갈라선 강정 주민들이지만, 해군기지 연말착공 강행방침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한 갈등이 초래된다며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도민사회가 진정으로 화합 발전하려면 해군기지 문제가 ‘제2의 4·3’으로 번지지 않도록 당사자인 강정주민 갈등 해소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 확보를 요구하는 강정 주민들의 ‘유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해군기지 관련 숫자놀음에서 잠시 발을 떼고 강정 주민의 가슴 속에 파고드는 시간을 차분히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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