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총회, 4개월 고민 끝에 조건부 수용 ‘거부’ 결정
‘미봉’ 도정-의회·주민 내부갈등 영향 커…법적 대응도

▲ '해군기지에 대한 대처방안'을 주제로 마련된 22일 강정마을 주민총회가 비공개로 이뤄진 한편, 강동균 마을회장이 총회를 마치고 주민 의견 수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우근민 제주도정이 출범한 뒤, 해군기지 ‘조건부’ 수용을 놓고 논란을 빚은 가운데,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회(회장 강동균)가 22일 주민 대다수 동의 아래 허용이 아닌 반대 투쟁을 계속 벌이기로 했다. 마을회가 조건부 제안서를 제출한 지 4개월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 다시 원점에 간 ‘해군기지’ 갈등

강정마을회는 이날 오후 7시30분께 마을회관에서 임시 총회를 열어 주민 투표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번 투표는 참석 주민들이 ‘해군기지 결사반대’ 또는 ‘조건부 수용’ 등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는 1인1표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 회장은 투표에 앞서 “이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면서 “그렇기에 더욱 더 주민 여러분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투표 결과, 참석 주민 106명 중에 대다수인 87명(82%)이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선택했다. 반면, ‘조건부 수용’ 찬성은 6명(6%), 기권 12명(11%), 무효 1명(1%)에 불과했다. 당초 조건부 수용 제안을 꺼냈던 주민들이 4개월 만에 이전 시점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린 셈이다.

앞서 강정마을회는 지난 8월17일 주민투표를 통해 다른 지역 입지를 검토한 뒤 해군기지 수용 여부를 결정짓는 ‘조건부’ 제안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찬성하며 제안서를 선택한 바 있다.

투표 결과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강 회장.

▷ 조건부 찬성 주민들, 왜 선회했나

강정 주민들이 ‘조건부 수용’ 거부와 함께, 해군기지 결사반대 투쟁으로 선회한 것은, 무엇보다 우근민 도정의 갈등해결 추진 부진과 제안서 찬·반에 따른 마을 내부 갈등이 기폭제다. 절대보전지역을 둘러싼 법적 공방에 법원의 ‘원고 부적격’ 판단과, 제주도의회 도의원들의 미온적 대처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강동균 회장은 이날 밤 10시10분께 투표가 끝나, 기자회견을 열어 “우근민 도정이 출범하면서 해군기지 건설 갈등을 윈-윈(Win-Win)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의지를 보여 문제 해결을 내심 기대했는데, 현재로선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고 피력했다.

▲ 지난 11월29일 우근민 지사의 주재 아래 열린 해군기지 건설 지원 설명회.

강 회장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것에 관해 책임 있는 정부 실력자의 약속도 받지 못한 상태라며 부연 설명했다. 더욱이 12월 현재 제주해군기지 지원 근거 조항을 담은 제주특별법 4단계 제도개선안은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애초에 지난 3년8개월간 함께 싸워 온 주민들이 조건부 수용 제안서를 섣불리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해군기지로 공동체 갈등이 심한 강정마을 주민들이 또다시 조건부 수용을 놓고 사분오열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 회장은 “4개월간의 또 다른 갈등은 오순도순 살아온 주민들을 다시 찢어지게 했기 때문에, 도정과 해군이 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강 회장은 “최근에 나온 판결처럼, 법원은 강정 주민을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들’로 보고 있다”며 “절대보전지역 소송에 주민들이 원고로 ‘부적격’하다는 판결은 강정을 지키고 살아 온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고 강조했다.

우 도정과 법원에 이어, 제9대 제주도의회마저 마을 주민들의 불신이 감지된다. 강정마을회가 지난해 12월17일 제주도의회의 해군기지 의안 ‘날치기’ 통과에 반발하며 진정서를 낸 ‘절대보전지역 해제 처분 취소’의 건이 여전히 표류하고 있기 때문. 강 회장은 “당시 소수였던 민주당도 반발했던 사안”이라며 “하루속히 상정해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 세부 투쟁 방식, 향후 계획은

“제주를 군사기지로 만드는 게 과연 이익이겠는가, 평화를 평화로써 지키는 게 제주를 위한 길이 아닐까, 보다 궁극적인 고민을 했다. 동시에 우리 마을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정마을회는 이번 총회에서 주민들 대다수가 해군기지 결사반대 의지를 피력하면서, 주춤했던 투쟁의 중지를 다시 모았다. 주민들은 총회가 열린 이날, 투표가 끝났는데도 2시간 가까이 토론을 벌이면서 향후 대책을 고민했다.

▲ 지난 1월18일 제주해군기지 기공식 때 비폭력 시위를 했던 마을 주민들 모습.

우선 마을회는 법적 투쟁 위주의 대응 방침을 세웠다. 오는 24일 오전에는, 제주지방법원이 지난 15일 ‘절대보전지역변경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 각하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 이에 불복하는 항소장을 제출한다. 또한 이번 무효 확인 소송 판결로 기각이 결정된 ‘절대보전지역 변경 처분 효력정지’도 불복해 상급법원에 항고한다.

해군과 주민간 물리적인 충돌 우려에 따른 의견도 제시했다. 해군과 공사업체의 계획대로라면 오는 27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자재들이 들어올 경우 천막 농성중인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이 용역 업체 측과 충돌할 우려가 큰 까닭이다.

강 회장은 “비폭력·평화적 시위를 했는데도, 사법 처리된 마을 주민만 벌써 30명이 넘었다”면서 “극단적인 행동은 가급적 자제하고 평화는 평화로 지켜야 한다는 원칙으로 법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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