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진 시민기자의 올레이야기

▲ "부산의 명물인 이기대(二妓臺)길을 만난다. 왜장과 함께 떨어져 죽은 두 기생의 무덤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제주를 떠나 도착한 부산의 첫날 기분과는 대조적인 활기찬 아침을 맞는다.

도보 여행자들다운 배낭을 멘 차림에선 그날의 일정에 대한 의지가 확실히 보이는 듯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질서 속에 묻어 있는 행군의 의미를 떠 올린다.

먼 거리도 마다않고 새벽에 출발하신 이 여사님(대구시.62).

종갓집 큰며느리로서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하셨던 시간들 속에서 못 다한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과 산행을 즐기신다. 전업주부로 돌아와 시부모님을 모시는 가운데 개인 취미생활은 눈치도 보일뿐더러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다. 보통 주부들이 그렇듯 집을 한번 비울라 치면 반찬 준비, 집안 대청소등 평상시 보다 더 바쁘다. 빈 자리의 불편을 가족들이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주부들의 여행계획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시작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떠나고 싶은 것은 더 잘 하기 위함, 재충전이라고 단단히 일러둔다. 사실이 그렇다.

나 역시 일단 벗어나니 눈에 안 보이는 상황에 대한 것들은 잊혀지면서 당장에 접한 자연과 사람들과의 즐거움에 행복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친정집이 부산이라며 서울에서 달려오신 닉네임 볼레낭님.

한 때 우울증도 겪었지만 여행과 올레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자연을 즐기신다며, 주부들의 개인 시간은 아주 중요하다며 강조하신다. 한 집안의 어머니의 건강은 모든이의 건강과 행복의 원천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셨고, 우리들의 일탈 같은 여행이 일상 같은 서울서 오신 닉네임 올리브님은 여행선수답게 모든 스케쥴을 관리하며 짧은 여정을 많은 추억으로 채워주신다.

동기간끼리의 여행에서와는 다른 인생의 선배들과의 시간은 연륜, 경륜 속에 쌓여있는 귀한 보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인생 상담을 하며 걷다보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도 아득한데, 멀리 제주의 자연같은 바닷길이 펼쳐진다. 부산의 명물인 이기대(二妓臺)길을 만난다. 왜장과 함께 떨어져 죽은 두 기생의 무덤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곳은 예전 군사작전지구여서 민간인 출입이 금지 되었던 곳이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경관을 즐기며 공유하고 있다. 군데 군데 조카같은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가운데 즐기는 우리는 미안한 마음도 들기도 했다.

만물상을 차려 놓은 듯한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가는 거대한 도시의 찻길에 지친 우리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멀리 보이는 안개에 반쯤 내놓은 광안대교와 신기루처럼 솟아있는 건물들을 보며 ‘저곳에서 우리는 치열하지’라며 그곳은 빠져 나온 안도감 같은 느낌으로 말없이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숨쉬기가 필요해. 또 돌아가야할 우리의 터전이 아닌가.’

▲ "멀리 보이는 안개에 반쯤 내놓은 광안대교와 신기루처럼 솟아있는 건물들을 보며 '저곳에서 우리는 치열하지'라며 그곳은 빠져 나온 안도감 같은 느낌으로 말없이 바라본다."
웃고 즐기다 보니 다리의 근육들은 아우성이다. ‘그만 걷자고.’ 다시 공구리를 타고 걷다 보니 지나가는 빈차들만 보면 괜히 부럽다.

젊은 여행자들의 히치하이킹 얘기가 떠오른다. 참 젊으니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내게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으나 비겁한 체력은 어느덧 그걸 원하고 있었다. 혼자가 아닌 둘 셋 그이상이니 우리 일행은 이미 용감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세운 차량을 타고 일부 일행을 배신하고 가는 중에 천사 같으신 부산시민은 “일행이 더 있으면 돌아갑시다.”라며 차를 돌리는 순간 차에 동승해 있던 세 명은 아주 치사한 나쁜사람이 되버렸다.

마침 ‘바르게 살자’라는 석비가 세워진 앞에서 일행을 태울게 뭐람. 그래도 그 일은 아주 큰 횡재였다.

“친절하신 아저씨 정말 감사했습니다. 따뜻한 부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의 마무리는 인간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어디를 갔느냐 보다 누구랑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한탄하며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느니 큰 비용 없이도,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소소한 주변 동네 마실가듯 개인 상황에 맞는 시간을 갖는 것도 현명한 한 방법일 것이다.

아름다운 일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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