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유자차를 담그며

며칠 전 뒷뜰에 꼭 한그루 심어져 있는 유자를 땄다. 이것 역시 농약을 하지 않아 곁에는 알 수 없는 그림이 무수히 그려져 있는 모습이었지만 어액과 EM퇴비를 양껏 먹어서인지 향기만은 일품이었다. 한 개 한 개 딸 때마다 그윽한 향기에 취해 콧노래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몇 번 가시에 찔리고 급기야는 5단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지만 금세 바구니는 그득해졌다. 맨 윗가지에 달린 몇 개는 폼으로 놔두던지 키 닿는 사람이 와서 따가도록 놔두었다.어릴적 우리 집 마당에는 여러가지 유실수가 해마다 탐스런 열매를 맺곤 했다. 그중 어린 내마음을 가장 들뜨게 했던 것은 다름아닌 앵두였다. 초봄에 연한 분홍빛 꽃을 피워올리는데 그 꽃들 사이로 여리디 여린 초록빛 이파리가 빼꼼이 밀고 올라오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달밤에 창문으로 내다보면 앵두나무는 마치 살아있는 양 펼쳐진 가지들 사이로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예쁘게 차려입힌 어린 아이들의 손목을 이끌고 봄놀이 나온 어머니의 고운 자태 같기도 했다. 그보다 더 황홀한 것은 봄비에 꽃잎이 지는 풍경이다. 봄비에 떨어진 분홍빛 꽃이파리들이 빗물을 타고 마당을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놓은 꽃냇물은 얼마나 황홀했는지.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해지면서 흰색에 가까웠던 초록빛 열매가 붉게 익어가면 앵두를 딸 때가 되었다. 오가는 길에 몇 알씩 따서 입에 물면 그 상큼한 맛은 알사탕보다 더 기막혔다. 어머니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올 즈음에 앵두를 따셨는데 가장 먼저 챙기시는 것이 커다란 대바구니였다. 보통 때에도 그 커다란 대바구니를 다 채울만큼 앵두가 많이 열리지도 않았건만, 해거리를 해서 한 움큼밖에 안 열린 해에도 어김없이 대바구니가 동원되었다. 적게 열렸다고 작은 그릇에 따면 나무가 노한다는 말씀이었다. 한사코 큰 바구니에 따야 나무가 다음 해에는 저것을 다 채워야겠군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앵두나무 맞은 편에 서 있는 대추를 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추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어머니나 내가 주로 맡았는데 대추를 아래로 던질 때에도 대바구니가 하도 커서 땅으로 튕겨져 나가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어쩌다 열 개 남짓 열리는 모과를 딸 때는 더욱 그랬다. 모과는 특히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그중 잘 생긴 것만(그래봤자 모과지만)몇 개 골라 머리밭에 두고 겨우내 향내를 맡으셨고 나머지로는 모과차를 담가 감기 기운이 들 때면 약처럼 마시게 했다. 그 귀한 모과 역시 턱없이 커다란 대바구니에 푹 싸안 듯 따시곤 했다.그것은 오랜 삶의 체험에서 나온 슬기였을 것이다. 나무를 살아있는 생물로 대하는, 그래서 그것과 교감하는 살아있는 삶의 지혜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러고보니 유자를 따서 담은 귤바구니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인다. 아예 컨테이너 상자를 가져다놓고 딸 걸 그랬나? 미처 슬기를 발휘하지 못한 나를 예쁘게 봐주어 내년에는 더욱 많이 달려주길 바랄뿐. 유자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렸다가 이튿날 흑설탕에 재웠다. 집안에 모아두었던 갖은 유리병이 다 동원되었다. 한병은 큰 아이 담임선생님 몫이고 또 한 병은 2년째 담임을 맡고 계신 작은 아이 담임 선생님 몫, 또 다른 한병은 지난해 전학온 큰 아이를 따뜻하게 거두어주신 6학년때 담임 선생님 몫이다. 별 것 아니지만 내 집안에서 열매맺은 것으로 차를 담가 선물하는 내게는 그게 시골 사는 재미이고, 받아 드시는 선생님들은 그게 시골 학교에 근무하는 잔재미일 것 같아서이다.차를 다 담고 나서야 올해 유자를 따면서 내가 저지른 또 하나의 치명적인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 사이 나 혼자 그 즐거움을 독차지했으니 언제 나는 철이 들꼬. 내년에는 사다리에서 몇 번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 손으로 커다란 바구니를 채우도록 해야겠다. 조선희/남군 표선면 토산리 제242호(2000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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