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시민기자의 식물이야기

최근에야, 둘째의 담임선생님이 친구가 짝사랑했던 그 사람임을 알았다. 둘이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딴에는 좋아하긴 한 모양이었다. 술 퍼먹고 자취방에 쳐들어와 곤히 자는 나를 깨워 앉히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어쩌고저쩌고 그랬다. 그러다가 생각에 마가 피어나는지 돌아서면 잊어질까 눈감으면 잊을 수 있을까, 울며 노래도 불렀다. 이런 일이 가끔 있었다.

오늘, 추석 인사드리러 산 넘어 갔다 오는 길에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고 또 그 詩가 생각났다. 시는 머릿속에서는 외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말이 되어 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노래도 중간 토막만 기억날 뿐이었다. 흥얼거리는데 전화기가 드르륵거린다.

얼라? 별일이 다 있네. 이런 우연이라니, 녀석이다. 전화기를 타고 오는 말은 윤진 곤밥이었다. 나룩쏠에 찹쌀 섞은 밥인 듯 차지다. 목소리에 술도 섞여 있다. 전에는 자취방으로 틈입했는데 오늘은 차 속으로 들어와선 저기 있잖아…내일 내려가서 모레 올라오려고 했는데 말이야, 어머니가 그럴 거면  내려오지 말래서 안가. 또 할머니가 내일모레 하셔, 아흔다섯이거든, 그래서 있잖아, 어쩌면 있잖아, 할머니가 잘못되시면 내일이라도 갈 수도 있긴 있어, 명절인데 혼자 있으려니 있잖아. 기분이 좀 그래…너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 이런다. 아주 오랜만인 것 같은데 말투는 그대로다.

전화를 끊고 얼마 있다가 내가 걸었다. 아까는 네가 말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하마. 혹시 제수씨 곁에 있니? 없기를 바라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야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을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아내라 해도 첫사랑의 기억은 공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는데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 곁에 있다며 전화를 바꿔 버린다. 이런, 사람의 인연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그녀는 동창생이다. 수업도 같이 받았던 적이 있다. 저기 있잖아…요. 높임말을 써야 함에도 내 말은 반 높임말로 되어 있다. 둘째 애 담임이, 누구냐 하면요…

전화 저쪽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야! 너 언제 적 이야기하는 거냐. 내려가면 죽인다.

한라천마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진 식물이다. 팔월 추석이 다가올 즈음, 땅에서 슬쩍 솟아 핀다. 썩은 식물을 먹고 살며 잎이 없다. 명색이 난이라 그런가? 키는 작으나 당차다. 처음 어느 오름 중턱에서 봤을 때는 선뜻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 후 많이 봤지만, 고요히 않아 있던 첫 모습만 선연하다. 먹잇감 즉 영양분이 떨어지면 더는 살지 못한다. 엽록소가 없는 식물의 숙명이다. 수정이 되면 자기 몸을 훌쩍 키운다. 될 수 있으면 멀리 종자를 퍼뜨리기 위함이다. 씨방 안에 종자는 아주 많다.

명절에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명절 틈바구니에서도 내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신 분들을 위해 올린다고 적어 뒀더니 친구가 읽고 울컥했는지 전화를 한 것이었다. 고향에 살아야 하는데 고향에서 피어야 고운데 이러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내려가면 내무리지 말라는 협박도 여러 번 하는 것인데, 나에겐 호강에 재운 소리로만 들렸다. 설마, 진짜로 타향 생활에 지친 것일까? 어느 시인의 말 아조 할 수 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 이것은 아닐 것이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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