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시민기자의 식물이야기

별것도 아닌데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입 밖에 내면 우습고 남우세스러운 것들입니다.

전에, 동네에 염소 키우는 집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염소와 목동이 기억납니다. 동네 골목을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염소 떼, 놀다가 얼른 담에 붙는 아이들, 오래전 일인데도 코앞에 있는 듯합니다. 염소를 따라 돌아다니다 마을 밖에 나가면 목동은 어쩌다 한 번씩 젖을 짜 먹게 하거나 하르방염소 타는 것을 눈감아 줬습니다.

어느 토요일, 수업 끝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길에서 염소 떼를 만났습니다. 목동이 같이 가자 꼬드겼고 친구도 가보자고 추근댔습니다. 오늘은 아주 멀리 나가 어두워야 돌아온다는 말에 겁이 났지만 따라 나섰습니다. 염소들은 서쪽으로 갔습니다. 햇빛 쨍쨍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마을이 보이는 동산, 저에겐 좀 무서운 내리막길이었지만 염소들은 익숙하게 달려가 담에 붙은 송악낭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염소가 먹고 난 담벼락에 다시 큰 염소가 달려들었습니다. 아주 좋아하는 먹이 같았습니다. 밭담이 무너져도 먹을 듯 먹었습니다. 금세 염소 키가 닿는 곳까지 깔끔해졌습니다. 작은 돌로 굽을 쌓았고 그 위에 큰 돌을 쌓은 담이었습니다. 아주 굵은 송악낭 줄기가 작지와 돌덩이 모양대로 들쑥날쑥 담에 붙어 서로 엉키며 뻗어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대나무로 송악총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어렸고 또 자를만한 연장이 별로 없던 때라 송악총 하나 만들면 한나절이 갔습니다. 총악총은 단순한 구조지만 배설대 만들때는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총신보다 약간 짧게 해야 빵빵 소리가 잘나 총 쏘는 맛이 좋습니다. 이 송악총의 탄알로 쓰는 것이 바로 송악입니다. 그래서 다들 송악낭을 알았습니다. 어디에 있는 송악이 굵고 토실한지 우리가 딸 수 있는 높이에 열매가 있는지 동네 송악낭을 눈에 넣고 다녔습니다.

송악낭은 가을에 꽃을 피웁니다. 가을 다음이 겨울이라 날이 서늘해지면 꽃가루를 운반해 줄 곤충이 점차 없어집니다. 봄, 여름에 피는 꽃보다 매개자를 유인할 그 무엇이 더 필요하겠지요. 송악낭은 구름비낭처럼 좋은 꽃가루를 많이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것 같습니다.

양봉을 오래 하신 동네 할아버지는 송악낭 꽃가루를 받으러 신효 아랫동네 고막곳에 가봤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곳에도 송악낭은 있지만 벌 놓을 만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벌통을 움직일 만큼 집단으로 자라는 곳이 고막곳인데, 그 동네는 작지왓이라 잣백이 있어 송악낭이 많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전에 잔칫집 올레에는 솔문을 세웠습니다. 소나무 가지에 솜 따위로 치장하고 송악줄로 감쌌다고 합니다.

송악은 무엇인가에 달라붙어 자라는 식물이라 나이 많은 큰 나무나 오래된 돌담에서 큰 둥치가 보입니다. 밭담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손을 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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