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동화작가

잠든 진숙의 모습을 보던 나영도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두 산모는 아주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나영은 꿈을 꾼다.
쫓기는 꿈을 꾸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희뿌연 물체가 자꾸만 나영을 쫓아오고 있었다. 나영은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갔지만, 다리는 자꾸만 휘청거리며 휙휙 접히기만 할 뿐 제자리를 맴돌 뿐 한발자국도 뛰지를 못한다.
“아~ 살려주세요!”

 

▲ 삽화/김품창 화백


희뿌연 물체가 나영에게 달려든다. 순간, 하얗게 먼지가 일어나면서 숨이 헉 막혔다.
‘숨을 쉴 수가 없어!’
희뿌연 물체는 나영의 몸속으로 후욱 빨려 들어왔다. 목구멍은 찢어지는 듯 심한 통증을 느끼게 했고, 온 몸은 뜨거운 것에 데인 것처럼 쓰라렸다.
“아악~!”
나영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병실 안이 희미하게 보인다. 마치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지?’나영은 맞은편 희뿌연 안개 속에 누워 있는 진숙일 건너다본다. 아직도 자나보다. 진숙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꽥, 꽥꽥~!”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매캐하고 지독한 냄새를 뿜는 연기가 폐 속 깊이 빨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불!’
“내아가!”
나영은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아가의 작은 가슴에 귀를 댄다. 팔딱거리는 심장 소리가 나영의 귀를 타고 온 몸으로 빠르게 전해져 왔다. 나영은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는 맞은 편 진숙이 걱정 되었다. 심한 현기증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진숙의 침대로 가는 나영은 바로 옆 침대가 마치 십리 길은 되는듯하다.
“이, 이봐요, 아, 아기 엄마!”
진숙을 흔들어 깨웠지만, 땀에 축축이 젖은 진숙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기 엄마 어서 일어나요! 어서요. 불이 난 것 같아요! 캑, 꽥꽥~!”
그때였다. 병실문 밖에서 소리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이야!”
막연하게 불이 났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사람들의 소리에 나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한 연기 때문에 숨쉬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유독가스……, 아가…….’
나영은 아기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새근거리고 자고 있는 아기를 가슴 깊숙이 꼭 껴안았다. 아기의 숨결이 그대로 얼굴에 와 닿는다.
“아가, 가자.”
나영이 아기를 안고 병실 문 앞으로 갔을 때였다.
“응애앵! 응애앵!”
갑자기 진숙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아, 아기.’
나영은 반사적으로 진숙의 아기에게로 황급히 다가갔다.
“그래, 아가야.”
진숙은 여전히 꼼짝 않는다.
“이봐요. 애기 엄마, 어서 일어나요! 어서요. 불이 났단 말이에요. 여기 산모가 있어요~!”
나영이 소리를 질러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더는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고 목이 따가워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나영은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진숙을 다시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진숙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캑캑!”
이제 더는 나영도 버틸 수가 없었다. 두 아이를 안고 병실 문을 연 순간이었다. 매캐하고 시커멓고, 뜨거운 연기가 병실 안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캑캑~!”
허겁지겁 병실 문을 닫은 나영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안되겠어, 안되겠어! 어쩌지!’
갑자기 양팔에 안긴 아기들이 자지러지듯이 울기 시작했다.
“그래, 아가야. 괜찮아. 그래, 그래.”
나영은 두 아기를 얼러본다. 하지만 아기들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
나영은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병원 안에는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매캐한 연기와 벌컨 불빛만 자꾸만 병실 안으로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나영은 무서웠다.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나영은 양팔에 안긴 아기들을 내려다보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 이불.’
나영은 침대시트를 걷고 물을 시트에 부었다. 두 아기를 얼굴만 빼고 젖은 시트로 꽁꽁 쌌다.
“걱정하지 마, 아가야. 엄마가 꼭 살려줄 거야.”
나영은 양팔에 안긴 아가들 귀에 대고 소곤댄다. 병실 문 가까이 가서 병실바닥에 엎드려 문을 열었다. 시뻘건 불길이 보인다. 나영은 두 아기를 안고 팔꿈치와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갔다. 얼마안가 팔꿈치와 무릎은 껍질이 벗겨졌다. 하지만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못했다. 불이 난 병원 이곳저곳이 부서져 내려앉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벌건 불꽃은 나영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오고 있었다.
“누, 누…구…없어요?”
제발 누군가가 이 무서운 상황에서 구출해 줄 것을 나영은 간절히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발……, 살려주세요~!’
“응애앵, 응애앵~!”
두 아기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영의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일까.
“여기요! 이쪽으로요!”앞이 보이지 않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누군가 나영을 향해 소릴 질렀다.
“아기가 둘 있어요! 도와주세요!”
나영은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 기어갔다.
“지금 가고 있어요. 몸을 낮추고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맞은편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득하게만 들렸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영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붉은 옷, 119소방대원이었다. 두 아기는 여전히 자지러지듯이 울어댔다.
“아주, 잘했습니다. 아주머니. 쌍둥이를 출산하셨나봅니다.”
“아, 아니…….”
소방대원은 어서 이쪽으로 피신하자며 나영을 데리고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복도를 지나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 멈춰 섰다.
“아기들이……, 많이 놀랐나 봐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울어대는 아기들을 내려다보며 나영이 말했다.
“아이고, 그게 아니라…….”
나영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은 소방대원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꺼내들더니, 아가들의 작은 손목과 발목에 매여져 있던 분홍색 띠를 끊었다. 비닐로 만들어진 팔찌와 발찌는 뜨거운 열기에 녹은 모양이었다. 쭈글쭈글 일그러져 있었다. 그 바람에 아기는 팔목과 발목에…… 화상을 입은 모양이다.
“아기들이 화상을 입었네요. 많이 아플 텐데…….”
“어디, 어디 봐요.”
나영이 두 아가의 손목과 발목을 들여다본다. 빨갛게 부풀어 올라 말간 물집이 군데군데 잡혀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자, 어서요~!”
작은 창 사이로 사다리가 올라와 있었다. 사다리를 보자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맥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맥이 풀리자, 갑자기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면서 나영은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어서 내려가세요.”
“…….”
멈칫거리는 나영을 소방대원이 다시 재촉했다.
“아주머니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어서, 어서 내려가시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소방대원의 재촉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풀어진 다리는 더욱 후들후들 떨리기만 할뿐 오금이 저려서 한 발짝도 떼놓을 수가 없었다.
“응애앵, 응애앵~!”
나영이 안고 있는 아기가 갑자기 세차게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기는 나영이 손이 얼굴에 닿자, 고개를 돌려 나영의 손에 입을 갖다 댄다. 배가고픈 모양이었다. 나영은 소방대원에게 안겨 있는 아가를 보며 가슴이 쿵쿵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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