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촌로의 되돌아 본 인생]윤세민 / 원로교육자

◆일제 총독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끼가 떠나면서 남긴 말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조선사람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사람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는 섬뜩한 말을 남겼다 하니 일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단죄하기 보다는 스스로 역사를 기만하고 은폐하려고 했다.

태극기 물결과 애국가 열창 속에 광복 70주년 축제는 끝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는 여전히 깊은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다. 아베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할을 넘겼다며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된다는 요지의 교묘한 사죄를 했다. 위장이며 자기회피일 뿐이다. 우리에겐 감격 그 자체였던 광복이 얼마나 열강의 이해(利害)가 중첩된 세계사적 사건이었는지 깨닫는 일이다. 우리는 왜 과거를 끈질기게 캐묻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사실로부터 미래를 위한 우리의 결단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명확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올바르게 정립됐을 때 현재가 바로 설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후에 전쟁 패인을 각 분야별로 분석해 백서를 냈다. 교육분야에서 도출된 문제점을 보면 우리가 겪어온 단련주의 교육, 암기 주입식 교육 바로 그 대목이었다.

초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내선일체, 국체명징, 인고단련을 대자로 써놓은 목재 삼각기둥이 돋보였다. 우리들의 생활지표로 제시해 준 것이다.

음악시간에는 느닷없이 삼화음을 들려주며 B29포격기 소리다. 만날 들어도 분간 못하는 그 소리. 수평선에 표출된 적함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시력을 보강할 비타민 영양소가 함유도니 식품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직시하라. 냉 한기에도 반바지에 그리고 신발도 고물이라 겨우 발가락 꿰매고 다니는데 양말조차 못 신게 굴었다. 그 통에 동상에 걸려 고생이 막심했다.

어른들이 주야로 근무하던 감시초소에 만원경 한 개 없이 적함 출몰을 살펴왔으니 회상해보면 요즘 애들 전쟁놀이 만도 못했다. 무턱대고 암기해야 할 대목이 왜 그리 많은지 장편으로 된 서너가지나 되는 칙어(勅語)와 일본 120여대나 되는 역대 천황, 여지없이 우리들의 꿈을 뭉개버린 암기위주 주입식 교육 달달 외워대던 그 소름이 뇌리에 각인돼 지금도 지워버릴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국민교육헌장이 나와 굳어버린 머리에 암기하느라 곤욕을 치렀던 일이 어제 같은데 까맣게 잊고 말았다. 무턱대고 암기와 주입이 아니라 이해와 심화과정에서 체득한 암기가 평생 가늠자가 돼 준다는 사실을 살아오면서 느껴질 때가 있다.

TV없던 시대에 미래를 예언하신 선생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울린다. 언젠가 비오는 날 등교하지 않고 집에서 뭣(?)을 보면서 공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너희들이 할 일이다.
 미래를 예언하시며 우리들에게 꿈을 심어주신 선생님은 흑백TV도 못 보시고 유명을 달리했으니… 선생님은 바로 도구 발명주의 교육의 선구자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앞서 도구개량(改良)주의, 합리주의 교육을 지향해 왔다고 한다.

그 결과 전파탐지기로 중장비 기구 등 각종 첨단기구를 생산해 낸 것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국력아 저력은 바로 교육에서 나온다. 백번 되씹어 봐도 틀린말은 아니다.

알맹이 없이 허지렁하게 늘어 논 잡문이 끝을 맺으며 또 한번 1944년 봄 찍은 전교생 사진을 보니 별의별 생각이 난다. 언어의 이중생활(학교에서는 일본어, 집에오면 우리말), 창씨개명으로 성명은 잃고 난데없이 부르던 그 이름들. 이제는 불러봐도 대답해주는 학우들. 아무도 찾아볼 수 없구나. 세월이 무상함을 느껴진다.

너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 우리를 대변해 소명(疏明)글이라도 몇 줄 남겨보라는 것만 같아 당시 몰멩(愚者)했던 필자가 그래도 책무를 다해진 기분이라 맘이 놓인다.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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