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강정마을 촌로의 되돌아본 인생 메인노출제외
애절과 비통으로 얼룩진 아버지의 일기장(1)[강정마을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원로교육자
서귀포신문 | 승인 2015.11.15 11:34
   
 

황금 덩어리를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값지고 소중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여태까지 나의 애장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가끔 곤비(困憊)할  때마다 읽고 나면 맘이 평온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애절과 비통을 슬기롭게 극복한 삶의 예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일기장은 중.일 양국 간 전면전쟁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에게는 일본어 사용을 강제로, 남경함락 축제행사. 이듬해에는 조선 육군특별 지원병제도 신설, 조선 교육령개정 공포해 중등학교에서 조선어과목을 폐지하는 등, 일제식민통치가 막 무르익은 1937년 당시 나이 27세에 강정 광제의숙(6년제 개량서당) 교사 재직 시의 학사업무와 처절했던 집안 사정과 제주의 세시풍속, 경제활동 그리고 농경문화를 짤막하게 일어로 적은 것이다.

이 해 내 나이 만 6세, 기억력이 꽤 성숙 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기장을 넘겨다 볼 수록 주마등 처럼 옛일이 어렴풋이나마 머리에 떠올라 동심에 사로잡혀 그리워진다.

표제지에 울긋불긋 박아낸 일본 육군전력 부대 배치도만 봐도 일본의 악랄했던 침략군국주의를 실감할 수 있다. 중국 천진에는 이미 주둔군 사령부가 배치되는 등 한반도를 삼키고 나니, 중국대륙 본토에 군침이 당겨 막강한 전투력 증배로 중일전쟁 촉발 직전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렇게 사생활 문화 일기장에까지 전운이 짙게 깔린 것은 패망을 자초한 역사의 교훈인 것이다.

첫 간지에 27세 되던 해의 토정비결 괘사(卦辭) 형운을 옮겨 놔 소망이 여의하니 날로 천금을 얻는다 (所望如意 日得 千金) 자성 예언에 부풀어 비운의 한 해를 슬기롭게 넘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당시 농촌 경제규모가 매우 열악해 큰 빚이 노부모 상례 삼년상 치루기였다. 게다가 겹상을 겪어본 사람들은 기둥굽이 파인다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해왔다. 그래서 불의에 당하는 곤경을 대비하느라 고의계(顧儀契)와 친목계에 동참해 상부상조의 미덕을 선양해 왔다.

조부 상기(喪期)에 증조모님이 병석에 몸 재워 누우니 장손인 아버지는 백방으로 명의를 찾아 한방약으로 간병해 온 애절한 구절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장지는 암매장 단속이 심한 때라 극비에 부쳐 도순마을 상경 폭낭동산 아래 타인의 경작이였다.

성분이 다 될 무렵 상두꾼들이 뒤숭숭 하더니 번쩍이는 긴 칼 찬 일본 관헌 순사가 나타나 혼비백산 장 밭은 마치 맹꽁이 울어대던 연못에 돌 던진 공포 분위기로 살벌해졌다.

삼베 누더기 옷 같은 제복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던 아버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기세당당하게 마주쳐 설득력 있는 대화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당시의 비통한 심정을 몇 줄 적어 놔,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떠올라 비통했던 심상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인다. 당시 장묘문화는 공동묘지에 매장하는 것이 불효라며 꺼려왔다.

그래서 명 지관(地官)을 모셔와 좋은 산 터를 마련하려고 상복 입은채 지관 따라 나섰다.

남이 경작지에 안장하고 나서야 지주를 찾아 가 텃새를 물면 되는 너그러운 세상이었다.

이렇다가는 경작지가 잠식된다며 계도하고 법 위반 시에는 처벌해 왔다. 이런 장묘문화가 60년대까지 이어져 왔다.

   
▲ 윤세민씨가 보관하고 있던 부친의 일기장.

며칠이 지나 중문 경찰관 주재소 간 기록이 이어진다. 아마 시한부 이묘 각서 제출과 과료 20원(당시 서당 교사 월급 17원) 처분으로 일은 마무리 됐으나 시종이 여의치 않아 심적 고통을 안고 살아오다, 삼년상 치루고 난 이듬해 육소장 명당을 구산해 이묘하고 나니 가운이 평온해 졌다는 일화가 구전돼 왔다.

이 해 정축년 2월25일은 한식날이었다. 한식, 단오명정을 강제 철폐하기 위해 일본 관헌들이 가호를 방문하는 통에 선조 제위전에 앞으로 한식 단오 명절은 사세불체(事勢不逮)지제 하옵고, 설 명절은 앙력설로 지내오니 흠향하옵소서축고 함으로써 농경문화의 지고한 명절은 영 잊고 말았다.

보릿고개 전후 절기에 맞는 명절이라 제찬도 넉넉지 못하나 애들은 보리 묵 점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는 재미로 기다려 왔다. 그러나 어른들은 여름농사 부종 등 농사일로 눈 코 뜰 새 없는 절기라 정성이 부족함을 자탄해 왔다.

암울한 그 무렵 서당학교에서 현장학습을 시도한 것은 경이적이고 내용도 다양해 지난 날 교직생활이 너무나 무색해진다.

최근에 개수한 중문 천제연 다리 시공 때 다녀와 공사가 거창해 장관(壯觀)이다. 짤막하게 소감을 적어 놨다.

그러니 1937년도 시공한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한때는 모슬포 비행장에 다녀와 말미에 백문이불여일견고사 구절로 맺고 말았다. 그토록 꿈에 안고 사신 아머님의 명복을 기리며 천추의 분한(憤恨)이 솟구친다.

서귀포신문  sgp1996@hanmail.net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귀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6357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산간동로 7942   |  제보 및 문의 : 064-763-4556/4455  |  팩스 : 064-763-4457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제주 아 01006  |  등록일 : 2006년 7월 26일  |  발행인 : 김성은  |  편집인 : 장태욱
상호 : 서귀포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616-81-16330  |  개인정보책임자 : 양용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용주
Copyright © 2019 서귀포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