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다음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곡목은 서귀포를 아시나요, 아까는 남성참가자가 불렀는데 여성분이 부르면 어떤 느낌일지, 큰 박수로 맞아 주세요"

옷장에서 최고로 멋진 옷을 고른 듯, 머리는 지금 막  미용실에서 나온 듯, 얼굴 가득 웃음을 띄고 열심히, 아주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관중들, 내가 서귀포에서 산  일 년 중에 제일 많이 모인 사람들, 그 속에 현수막들이 흔들린다. 가왕은 OOO의 것, 우리 동네 명가수, OOO이 최고다,  상 못 타면 짐 싸서 나가까지 동네마다 마을마다 자신들의 대표가수들을 열렬히, 때론 장난어린 협박으로 응원한다.

서귀포 칠십리 축제, 노래가 펼쳐지는 무대도 있지만  바로 그 아래 잔디밭도 무대이다. 기분좋게 막걸리 한 잔 드신 춤꾼삼촌이 쉬지 않고 춤을 춘다. 바지 색깔이 예사롭지 않는 동네삼촌이 풍덩한 치마에 슬리퍼를 신은 다른 동네삼촌과 돌리고 돌리고 스텝 을 밟는다. 관중들은 노래도 듣고 춤도 보면서 박수소리 드높여 흥을 돋군다.

"다음 출연자, 모십니다."
얼른 보아도 하루방인데 모자스타일로는 힙합하는 20대같다.
"연세가…"
"71"

와아, 관중들은 박수와 함께 함성을 지른다. 경로우대 박수이다. 동네 예선에서 당당히 우승하여 이 자리에 올랐다는 말씀이 빈말이 아니게 정말 노래를 잘 부르신다. 저 분은 젊어 한때 어떤 꿈이 있으셨을가. 저 노래를 부르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살짝 마음에 파란이 일며 콧날이 시큰해지는데 노래가 끝난 다음 손녀로 뵈는 어린애가 꽃다발을 전해드리며 볼에 뽀뽀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건장한 세 남자가 무대에 오른다. 과장된 입술 화장과 여자처럼 차린 모양새에 관중들이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린다. 서귀포시 아랑조을 거리의 음식점 아들이라는 소개에 진행자는 살짝 그 가게 홍보까지 해준다. 그래도 말나거나 탈 날 거 없는 게 마을 축제의 장점이다.

"아이고, 어르신 또 만나니 반갑습니다"

진행자가 반색을 하는 이 출연자는 누구인가. 노래가 좋아서 이런 노래자랑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신다는 우리동네 단골가수란다.

"원래 이 분의 애창곡은 무너진 사랑탑인데 오늘을 다른 걸 부르신다니 신곡무대가 되겠습니다."

사회자가 물러가고 무대에는 단정한 신사복에 중절모를 쓰신 가수만 남아 가요무대를 떠오르게 한다.

"평균연령 59세 아줌마 댄스팀 올레칠선녀의 초대공연입니다"

속눈썹까지 붙힌 본격적인 무대화장에 화려한 의상, 프로페셔날하게 춤바람난 아주망들이 사회자말마따나 완전 무대를 뒤집어 놓고 내려갔다.
완연한 가을바람이 부는 자구리 앞바다, 나는 슬슬 추위가 느껴지는데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찬바람이라면 질색하시는 어머니께 슬쩍 여쭈었다.

"엄마, 안 추우세요? 그만 들어갈까요?"

"괜찮아, 사람들 틈에 있으니까 안 춥다, 뭐"

아하! 사람들 속에 있어 따뜻한 거구나. 성읍에서 대정까지 서귀포 70리의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이렇게 마음을 풀어놓고 흥을 돋구니 추워도 춥지가 않은 거구나. 그래서 마을축제가 있는 거로구나.

"안녕하세요. OO마을에서 왔습니다. 서귀포에서 우리 마을이 제일 살기 좋은 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꼭 한번 놀러오세요"

노래하기 전에 깨알같이 마을 자랑을 빼먹지 않는 이런 마음은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 같은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 박수로 맞장구를 쳐주니, 오늘 상을 타지 못한다해도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은 없을 테니 말이다.

참가자들의 노래가 끝나고 심사가 진행되는 사이에 나는 조용히 잔치마당을 빠져나왔다. 평소에 한적하던 바닷가가, 푸른 잔디만 보이던 자리가 반짝이는 무대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찬 것을 좀 떨어져서 통째로 보고 싶었다. 바다와 사람과 축제가 어우러진 분위기, 나는 얼른 집을 향해 돌아섰다. 그 분위기 흩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굳이 심사결과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무대위의 모든 참가자가 사실은 다 1등 아닌가. 그 마을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했고 서귀포 사람으로 하나됨을 느끼게 했으니, 그 앞에 등수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귀포 칠십리축제, 내 마음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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