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이번 일요일 저녁 6시에 아이들 다 모이기로 했어요. 그때 치킨 사준다고 하셔서…"

핸드폰에 들어온 반가운 문자메시지. 아, 고 귀여운 녀석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그 때 무대위에 쪼로니 서서 열정적으로 자신들이 해 온 일을 발표하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지난 10월2일 해녀축제기간을 맞아 해녀에 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었다. 초대장에서 발표내용을 죽 훑어보다가 태왁이 둥둥이라는 제목에 눈이 멈췄다. 재밌네, 발표자를 보니 제주 사대부고 학생들로 되어있었다. 청소년들의 해녀체험이라, 이거 독특하겠네, 나는 이 발표에 꽂혀 참석을 결심했다.

남녀학생 8명이 무대에 올랐다.

"제주에 살면서도, 우리 할머니가 바로 해녀였음에도, 정작 해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우리들이 해녀를 체험해보고 알리자는 뜻에서 시작했어요"

한 친구의 외할머니를 찾아가 해녀 인터뷰를 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와 친구들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당신이 한 일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자 아주 행복해하셨다.

친구들과 태왁을 들고 고무옷을 입고 물속에 직접 들어가는 체험까지 했다. 무서워서 바위틈에서 갯것을 잡기만 한 친구도 있었지만 물속체험은 해녀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그 일을 해온 분들의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이들의 체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생들이 많이 지나는 학교의 한 공간에 체험부스를 설치해 해녀홍보에 나섰다.

"애들이 간식을 좋아하잖아요. 거기 착안해서 해녀에 관한 퀴즈를 내고 맞히는 사람은 간식을 주었어요. 생각보다 친구들의 호응이 컸어요. 처음에는 간식에 혹해서 왔지만 나중에는 무관심해서 몰랐던 것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해녀에 대해 알게되어 좋다고 했어요. 우리들도 보람을 느꼈지요"

그들의 발표가 끝나자 발표장에 모인 어른들은 큰 박수를 쳐주었다.

"너무 떨려서 잘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박수를 받으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해놓고 잘하지 못했다니, 안되겠다.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필요해! 질문이 있냐는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너무 잘했고 입시에 쫓겨 자기 주변조차 관심없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 것이 훌륭하다. 내가 떡볶이 쏘겠다고 발표를 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떨린다고 하더니 떡볶이 소리에, 무대위에서 동시에 '감사합니다'하며 입이 벌어지는게 멀리서도 보였다.

사회를 보시던 분이 "아, 떡볶이 가지고 되겠습니까?, 적더도 치킨 정도는 돼야…" 거들었고 발표장은 웃음바다로 훈훈한 분위기가 되었다.

내 전화번호를 주고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학교로 전화를 걸어 인솔교사였던 분께 부탁을 드렸다. 아이들이 공부에 바쁘기려니 하면서도 꼭 다시 이 기특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또 명색이 어른으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강박도 살짝 있었다.

약속장소는 제주시청앞 치킨집,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음이 설레였다. 사람을 만나면서 이렇게 설레인 게 얼마만인가.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있어야 편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을 핑계로 30분쯤 늦게 갔더니 과연 폭풍흡입으로 빈 접시들만 놓여있었다. 작은 접시에 내 몫을 남겨놓은 것이 참 귀여웠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무렵,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거 같아 별명을 알려달라고 했다.

"저는 투덜이예요. 불만불평을 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저 나름대로는 비판의식이 있다는 뜻이예요"
"제 이름이 호로 끝나는데 친구들이 구자를 붙혀서 호구라고 불러요"
"호구? 만만하다는 뜻이잖아. 넌 그 별명이 싫지 않니?"
"좋아요. 착하다는 거니까요"

세상에, 이게 순수라는 거구나.

"저는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별명을 정하려구요. 나를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
"그럼, 당분간 너는 '깊이'라고 기억해야겠구나."
"깊이, 그거 좋아요. 제 별명 그걸로 정할게요"

4명의 소녀와 4명의 소년, 그들과 함께 한 일요일 한때는 내가 제주에서 보낸 가장 보람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 딸들보다 훨씬 어린 이 친구들이 그날 내게 준 선물은 순수와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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