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경기도의 대도시였다. 우리 집과 학교는 중심지 번화가에 있었다. 집주소도 가운데를 뜻하는 중구(中區)였다. 상점이나 음식점 이름에는 중앙(中央)자가 들어가는 곳이 많았다. 대학진학으로 고향을 떠났어도 내 마음속 머릿속에는 그 동네가 늘 자리잡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은 가끔 꿈에도 나타났다. 어른이 되고 삶이 복잡해지면서 힘든 순간에는 고향에 가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집에서 학교에 가던 길, 친구들과 놀던 장소, 이런 것들은 어떤 신경안정제보다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향이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자식들을 떠나보낸 시골집처럼 활기가 사라지고 심지어 스산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것이 영 예전같지 않았다. 과거에는 논밭이던 외곽이 신도시로 개발되고 관공서들이 그리로 옮겨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도 그 신도시로 옮겨갔다. 옮겨간 학교는 이름만 같을 뿐 우리 학교가 아니었다. 운동장도 교실도 내 기억속의 그것이 아니니 남의 학교였다.

고향을 생각하면 공연히 슬퍼졌다.  기억의 장소들이 사라지고 사그라들어가는 분위기의 고향을 바라보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도 똑같은 심정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이토록 빨리 변하는 것일까? 메뚜기도 아니면서 다른 곳으로 뛰고 나면 먼저 있던 곳은 완전히 관심 밖이 된다. 거기 남은 사람들은  2등시민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곳에는 오랜 정주지역이 갖는 문화와 역사가 있고 그것을 기억하고 유지해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그것을 살려가는 노력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지난 11월 2일 오전 10시, 간세 라운지(제주 중앙로타리 위치, 제주올레 안내센터겸 카페테리아)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준비되고 있었다. 제주로 이주 해온 음악인과 동네 주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즐거움을 나누는 원도심 올레길에서 만나는 소통 토크쇼. 그 토크쇼의 진행을 부탁받았을 때 나는 참 기뻤다. 신제주가 탄생한 다음 원도심이라고 하는 이곳도 나의 고향과 비슷한 운명을 강요당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이런 시도가 반가웠다.

공연자인 가수 이탁호씨(컨트리 뮤직 가수)와 칠선녀(아줌마댄스팀)가 일찍부터 와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과연 동네주민들이 얼마나 올 것인가. 제주사람들은 부지런해서 일은 해도 공연을 즐기러 다니지는 않는다고 하던데... 주민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앞으로는 원도심 주민들을 위한 이런 행사에 예산이 편성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10시가 넘으면서 사람들이 한 두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도일동에서 젊은 동장님이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마을 합창단과 함께 참여하면서 객석에 활기가 돌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흥에 겨워 모두들 무대로 나왔다. 그리고는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서로서로 연결되어 인간기차가 되어 버렸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달려가는 흥겨운 기차놀이가 월요일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면서 행복해졌다.

제주도 이제는 마을만들기, 원도심 살리기, 이런 사업들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업에서의 핵심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서 소통할 때 마을은 활기를 띤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할 때 그 마을은 진정 살아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티비가 없던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티비였다. 수도가 없던 시절에는 샘터가 마을 공회당이었다. 티비와 수도가 집집마다 있는 오늘날,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은 만날 기회를, 소통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결코 물질이나 편리함에 있지 않다. 사람들끼리 나누는 정과 기쁨이야말로 지속가능한 행복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웃으면서 한때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며 삶의 힘이 되는가. 그날 내가 본 것은 마을의 올레길에서 사람들이 만나 마음의 올레를 열 때 마을은 생명으로 빛난다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