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7년, 제주사회를 경악으로 내몰았던 재일교포 위장간첩단 사건도 국가권력에 의해 조작되었던 가짜간첩단 사건이었음이 대법 확정 판결에 의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유신 말기 서슬 시퍼렇던 시절에 "너 간첩이지?"라는 지목 한 번에 모처 지하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던 풍경이 비일비재했었음을 아직껏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다. 잊지 못하는 기억들 한 두 꼭지씩 무용담 삼아 말하는 이들도 많은 우리 제주지역 사회이다. 특히 4·3과 결부된 레드 콤플렉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은연중에 몸조심, 말조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종의 피해의식이면서 아직껏 씻어낼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지난 40년은 악몽이었다고 말하는 조작간첩단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우편향 국가권력, 특히 극우 보수 세력에 비판과 비난의 날을 세우는 이들에게 '친북', '종북', '빨갱이'라는 꼬리표 붙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국가, 선진국가로 진입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느끼게 한다.

사실, 1970, 80년대만 하더라도 툭하면 암약 간첩단 검거, 고정간첩단 일망타진이라는 뉴스가 연일 신문지면, 방송망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 간첩들이 암약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남북으로 대치해 있는 한반도의 분단현실 때문이다. 세습 왕조 같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독재 권력자들이 정권유지 차원에서 무고한 국민들을 간첩으로 엮는 일이 비일비재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반독재, 반유신을 외치는 시위, 데모에 나선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좌경용공분자로 낙인찍는 일이 헤일 수 없을 만큼 숱했다. 중앙정보부에 의한 조작으로 밝혀진 인혁당 사건이라든지 1960대말 발생한 동백림 사건 역시 다르지 않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조사활동을 통해 많은 간첩단 사건들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조작극이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러한 역사적 과오의 드러냄을 통해서 "1970~1980년대에 발생한 재일교포 관련 간첩사건들은 재일교포가 국내에 있는 가족친지들과 일상적인 왕래를 통해 교류한 사실이 빌미가 되어 간첩으로 조작돼 처벌받은 사건이 대부분"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간첩 또는 간첩 가족이라 덧씌워진 멍에를 메고 지난 40년을 살아온 재일교포 위장간첩단 피해자들이 무슨 죄인가. 또한 빨갱이라고 보는 주위의 시선과 손가락질, 연좌제는 이제 없어졌으나 여전했던 사회적·신분상 차별대우를 감내하며 살아온 그 세월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세월을 되돌려 놓을 길이 있기는 한 것인가. 강제연행,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 자백강요, 범죄사실 허위 조작, 주변 친인척·동료들 불법 연행 및 허위진술 강요 등으로 수도 셀 수 없이 많은 간첩들을 만들어냈음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이처럼 조작간첩단 사건으로 명예와 자존감을 잃은 전 제주교대 설립자이며 제1대, 2대 학장까지 지낸 분의 경우는 자괴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국가권력에 의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쓴 당사자나, 간첩가족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던 그 피해 가족들에게 국가는 응분의 보상을 해야 마땅한 일이다. 꼭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재심 불신청 피해 가족에게도 신체적·정신적인 피해, 경제적 피해 정도를 헤아려 배·보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재정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조작극을 펼친 장본인들이 어떤 자들이었는지 끝까지 규명해 배보상에 투입된 국민 혈세를 충당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어김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근거 마련이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 이 역시 국가의 책임이다.

조작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국민 인권을 유린한 국가는 사죄와 함께 40년 세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레드 콤플렉스로 치를 떨며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함이 마땅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당시 국가의 조작간첩단 사건을 대서특필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물론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언론사들 역시 시대적으로 권력에 부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를 함이 옳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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