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수첩]사교육의 바다에서 헤엄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몰라. 스스로 공부하던 시대는 옛날이야. 과외 안하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니까. 엄마가 이 모양이니 어떻게 애가 클 수 있겠어?”과외를 너무 시키면 애가 불쌍하다고 말하던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이가 클 수 있는 여지가 사교육에 대한 엄마의 관심과 맞물려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흐르기 시작하였다.중학생 자녀를 둔 친구들이 너도나도 대화에 끼어들었다.“우리 애가 체육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전체 석차가 100등 이상 내려가더라. 정말 눈앞이 캄캄해서 수영과 달리기를 대표선수 출신에게 개인과외 받고 있어.”“미술은 또 어떻고. 숙제가 곧 평가라니 정말 신경이 곤두선다. 밤을 새가며 그림을 그린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래도 학원에서 숙제하는 애 하고는 경쟁이 안돼.”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학원에 가는 것보다 학원강사를 집으로 모셔서 그룹과외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 일과가 끝나고 나서 요일마다 다른 강사와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눈에 학교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전인교육, 인성교육, 창의성 교육을 기저에 두고 실시하는 교육, 지와 정을 조화롭게 키워주고자 하는 노력이 오히려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일이다. 고학년 교실에서는 학원 문제지를 푸는 아이들이 많다. 쉬는 시간에 풀다가 다 못 풀면 공부시간에 교과서 밑에 숨겨서까지 푸는 아이들이 있다. 지속되는 과외로 지쳐서 공부시간에 졸거나 자는 아이들도 있다.사교육의 확대는 공교육의 부실화와 맥을 같이 한다. 어느 것이 먼저 잘못 되었는지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사교육과 공교육의 공존은 삐걱거리는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각종 대회에서의 입상 실적이나 자격증이 내신 점수에 반영되면서 사교육에 대한 열풍은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글짓기, 그리기, 컴퓨터, 악기 연주 등 대회를 대비한 과외가 산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며칠 전 방송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축 사유가 변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택마련이 첫째 사유였는데 이제는 저축하는 이유가 자녀교육비 마련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교육 전체 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부의 예산보다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사교육비가 더 많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부모는 부모대로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과중한 공부부담에 짓눌려 날개를 못 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입시제도와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에서 기인한다. 학벌을 따지지 않고 그 사람이 실제 기능을 보고 취업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명문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그것이 당장 안된다면 중,고등학교 내신성적과 수행평가에 대한 불합리함부터 개선하여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예체능의 경우이든 문예이든 그 분야에 소질이 있고 더욱 신장시킬 필요성이 있는 아이들만 과외를 하고 그 결과는 평가에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교육이라는 태풍 언저리에는 힘겹게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예전처럼 돈이 없어도 노력만 하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교사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공교육의 목표와 도달점이 사교육에 의하여 완성되어서는 학교의 존재가 무의미하다. 교사의 존재 역시 의미를 잃는다. 박희순/제주교대부속초등교 교사 제253호(2001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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