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면 가시리 포제 준비 현장

가시리 포제 제관들이 노인회관에 모여 포제 예행연습을 하는 모습이다. 제관들은 포제 3일 전에 목욕재계하고, 노인회관에 모여 합숙에 들어간다.

제주에서는 음력 정월이면 마을별로 포제를 지낸다. 마을사람들의 불상사를 예방하고 오곡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제사다. 마을을 지켜주는 자연신인 토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사는 토신에게 올린다.

포제는 대상이 자연신인 점에서 무속의 요소를 지니지만, 제사의 절차는 유교적이다. 마을은 초헌관(初獻官)·아헌관(亞獻官)·종헌관(終獻官) 등을 포함해 10명이 넘는 제관들을 미리 선발한다. 이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한 장소에서 근신한 후에 포제단으로 나가 제를 올린다. 만약 근신하는 기간 동안 마을에 불상사가 생기면 포제가 연기된다.

포제단은 대부분 마을과 떨어져 있고,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자정 무렵이다. 문명의 방해를 받지 않고 토신과 교감할 수 있는 시공간을 택한 것이다.

제주에서 언제부터 포제를 지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19세기에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다가 해방 이후에 복원되었다.

포제일이 가까워지면 제관들은 목욕재계한 후, 노인회관에 모여 합숙에 들어간다. 이 때 근처에 금줄을 둘러 잡인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표선면 가시리(이장 현경욱) 주민들이 포제를 준비하는 현장을 다녀왔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음력 12월이 되면 이장이 초집사방 회의를 소집해 제관을 선발하고, 포제에 필요한 예산을 세운다. 마을에서 덕망 갖춘 어른 가운데 초헌관·아헌관·종헌관 등을 선발하고, 성씨별로 능력과 연령을 고려해 기혼자 가운데 기타 제관들을 추가로 선발한다.

금년 포제에 선발된 제관은 초헌관(강성종)·아헌관(오병탁)·종헌관(강재섭)·집례(오제광)·동찬(오경순)·서찬(김호일)·알자(현경진)·봉로봉향(오봉림)·봉작전작(안재근) 등 총 10명이다.

과거에는 포제에 필요한 경비를 발미(發米)라고 해서 각 가정에서 성의껏 쌀을 제공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이후에는 현금으로 징수했다. 올해는 가구당 3000원씩 할당했는데, 미납자가 있어도 독촉은 하지 않는다.

포제 일자는 음력 정월 첫 번째 정(丁)일로 택하고, 만일 연기가 필요하면 중정(中丁)일을 택한다. 정월을 넘길 경우는 포제를 지내지 않는다. 금년 포제도 첫 번째 정일(丁卯)인 9일에 열기로 했다.

포제를 올리기 3일 전, 제관들은 목욕재계 후에 노인회관에 모여 합숙을 한다. 이 때 합숙소 주변에는 금줄을 둘러 부정한 자의 출입을 제한한다. 또, 단정하고 건장한 중년 부인 한 두 명이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합숙하는 동안 주민들은 제관에게 찾아와 문안 인사를 올린다. 주민들은 본인들 대신에 제를 올릴 제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제를 정성껏 잘 올려주실 것을 당부한다. 제관들은 찾아온 주민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포제 전날이 되면 제관들은 포제 예행연습을 실시한다. 초헌관이 포제를 총괄하는데, 초헌관에 따라 종일 연습하기도 하고, 저녁에 한 두 차례로 끝내기도 한다. 하지만 포제를 실수 없이 치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자 하는 마음은 한가지다.

가시리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설오름 전경이다. 가시리 포제단은 설오름 정상부근 바위그늘에 있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인적이 드믈고, 비바람에도 제를 지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제물을 들고 포제단으로 이동한다. 가시리 포제단은 설오름 동쪽 정상 부근 큰 바위 아래에 있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사람의 왕래가 없고 자연석으로 둘러싸여 강풍에도 제를 올릴 수 있는 곳이다. 포제일 3일 전에 주민들은 제단 주변을 청소하고, 밥을 지울 수 있게 물과 땔감을 준비해 놓는다.

포제 때에는 제물로 돼지 한 마리와 옥돔 등 과거에 귀하게 여겼던 음식을 준비하는데, 반드시 가열하지 않은 상태로 올린다. 토신은 문명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상태를 좋아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제물로 사용할 통돼지 한 마리를 설오름 정상으로 들고 가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과거에는 주민들이 미리 준비한 가마를 이용했는데, 최근에는 산 정상으로 향하는 레일을 설치했다.

가시리 포제단에서 통돼지 제물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가마를 이용해 돼지를 운반했는데 최근에는 레일로 나른다. (사진은 가시리 마을방송 화면이다.)

자시(子時)가 되어 천지사방이 고요할 때, 초헌관이 “대축은 신위 우측에서 동쪽으로 꿇어앉으시고 축을 읽으세요”라고 지시하면, 대축을 맡은 제관이 축문을 낭독한다. 포제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높고 맑은 신령님께서 관장하시는 이 지역의 백성들을 보호하시어 괴이한 일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일, 소나 말이 죽는 일 등을 막아 주십시오…”

긴 축이 다 끝나면 헌관은 알자나 대축의 도움을 받아 손을 씻는다. 그리고 잔을 올린 후, 향을 피운 다음 남은 제례의식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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