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기자 탐사 - 귤의 문화사 7>

과일, 혹은 과일을 품고 있는 숲 덤불을 언어로 노래한다면 어떤 풍경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정갈한 언어로 과일나무 숲을 노래한 바 있다. 강진 유배시절 쓴 시인 <귤나무 숲>에서 다산은 이렇게 노래한다.

     초당에 있어 많은 책이 없어도
     꽃 피고 물 흐르는 소리 들리네.
     귤나무 숲에 소나기 그쳐 아름답고
     바위 샘물 길어 찻잔 그릇을 닦네.

다산은 꽃과 샘물, 비가 온 후의 깨끗한 귤나무 숲을 벗 삼아 책이 충분하지 않아도 유배 시절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귤나무는 물기를 머금으면 반짝이기 시작한다. 이제 막 소나기가 그치고 그 위로 햇살이 비치면 귤나무 숲 전체가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그래서 이 풍경을 다산은 단순하게 ‘아름답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소나기가 스며든 샘물로 찻잔을 씻는다. 귤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단출한 삶의 모습이다.

다산초당은 오늘날에는 초당이 아니라 기와로 덮여있다. 그러나 정약용이 직접 삽을 들고 판 우물인 약천과 초당의 왼쪽에 자리 잡은 정석 바위, 제자들과 함께 만든 연지 등은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산은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천일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자연을 관찰하고 귤나무 숲을 노래했다. 이런 단순한 삶 속에서 다산은 제자들에게 ‘동트기 전에’ 일어나 배우고 쓰기를 멈추지 말라고 하였다.

강진의 다산초당.

다산이 읊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귤나무 숲과 달리 괴테의 레몬과 오렌지 찬가는 시인의 갈망과 열광을 보여준다. 괴테는 그의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에서 특히 레몬을 동경의 이미지로 사용한다. 독일의 어두운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시인은 남국을 그리워하는데, 괴테가 떠올린 그리움의 이미지는 오렌지와 레몬이다.

레몬 나무 꽃이 피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그곳에선 거뭇한 잎 한가운데 황금 오렌지가 빛나지요...

황금 오렌지의 나라, 고전과 르네상스의 나라. 그곳은 다름 아닌 괴테가 새로운 생명을 얻었던 이탈리아였다. 괴테는 특히 남부 이탈리아를 두고 레몬 꽃이 피는 곳으로, 황금 오렌지가 빛나는 곳으로 노래했던 것이다. 괴테가 여행을 했던 18세기의 여행은 오늘날의 여행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여행은 위험 그 자체였다. 노상강도는 흔히 있는 일이었고 마차가 다니는 길은 최악의 상태여서 마차가 뒤집히는 일도 흔했다. 외국여행은 통상 아주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일로 일주일 내내 강행군을 해도 기껏해야 사 오백 킬로미터쯤 달릴 수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감수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상인들이었다. 그리고 죄를 참회하기 위하여 로마로 향하던 순례자들, 작가들, 마이스터에게서 건축이나 그림을 배우러 떠난 도제들,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찾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있었는데 뒤러가 그런 경우였다. 부유한 은행가인 푸거는 이탈리아의 은행시스템을 배울 수 있도록 그의 아들을 베네치아로 보낸다. 모차르트 또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전 유럽을 여행했는데, 이런 순회 여행에서 이탈리아는 빠질 수 없는 대상이었다.
이처럼 르네상스의 후광을 입은 이탈리아는 18세기와 19세기에는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명문가 자제들이 일정 기간 동안 교육을 받는 장소였고, 이탈리아에서의 배움은 하나의 사회적 관습이었다. 여행을 통한 현실 밀착형 교육과 개인교사를 통한 전통적 교육이 균형을 이루며 유럽의 교양을 빚어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를 배경으로 괴테는 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성장기의 여행이 아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직장의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감행한 일종의 도망, 일탈이었다. 바이마르 공국의 장관직은 그의 문학적 창조성을 봉쇄해 버렸다. 그는 극단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장소의 변화든, 직업의 변화든 뭔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구나 그리스 고대 문화를 품고 있는 이탈리아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고 이탈리아라는 환경이 그의 예술가로서의 창조성을 되살려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작별인사도 없이 우편마차를 타고 괴테는 야반도주를 한다. 처음에 괴테는 그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익명으로 여행을 한다. 신상이 드러나 귀찮은 소문이 독일로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꽤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괴테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는 어머니나 절친들 조차도 그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괴테는 무엇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난 것일까?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추구한 것은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혹은 르네상스 예술이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한 것은 고대성, 그러니까 서양 예술의 뿌리를 거슬러 가는 진정한 고대성이었다.

괴테는 본래 몇 달간의 계획으로 여정을 떠났다. 그러나 그 몇 달간은 거의 2년이 돼 버렸다. 또한 이 여행 기간은 그에게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킨 진정한 탐구의 삶으로 가는 길이었다. 괴테는 이탈리아에 더 오래 체류할수록 이 나라의 일상에 녹아들어 갔고 구체적으로 일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 후에 괴테는 약 천여 점의 스케치와 수채화를 바이마르로 가져온다. 그리고 다시 창조성을 발휘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는데, 1829년에 출판된 괴테의 여행 일기는 대단히 아름다운 책이다. 이 일기는 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찰을 보여주는 예술가의 성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행지인 이탈리아에 대해서 보다 괴테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내면의 고백이 특히 이상화된 이탈리아, 괴테의 열렬한 갈망을 드러내는 오렌지 찬가로 드러나는 것이 흥미롭다.

레몬 꽃이 만발하고
어두운 덤불속에서 황금 오렌지가 빛나며
푸른 하늘에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고요한 미르테나무와 월계수가 높이 서 있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거기로, 그곳으로
나는 그대와 함께 가고 싶소!

    
괴테는 1787년 3월 16일 카세르타에서 쓴《이탈리아 여행》에서 나폴리는 천국이며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취된 듯한 자기 망각 속에 살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예전의 자신을 좀처럼 인식할 수가 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너는 옛날에 미쳤거나 아니면 지금 미쳐 있다’라고 자기 고백을 한다.
시인이 천국에서 경험한 ‘미쳤다’라는 느낌에 일조한 것은 남국의 햇빛을 받고 자란 오렌지와 레몬의 맛과 향기였다. 나폴리에서 팔레르모까지 이어지는 진한 남국의 냄새는 창백한 얼굴의 독일인에게 엄청난 열광과 환희를 가져다준다. 이렇듯 괴테는 팔레르모를 여행하면서 귤과 오렌지 향기가 항구까지 퍼져오는 것을 들뜬 감각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가장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은, 모든 식물들에 한결같이 퍼져있는 진한 향기로, 그 강렬한 효과는 어떤 대상이든 몇 걸음만 뒤로 떨어져 있어도 담청색의 색조로 인해 좀 더 뚜렷하게 구별되어 결국 그 독특한 색상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적어도 본래의 색상 이상으로 훨씬 짙은 청색으로 보였다. 그런 향기가 그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들과 배들과 갑들에 얼마나 새로운 인상을 부여해 주고 있는지, 화가다운 안목으로는 아주 기이하게 느꼈다. 그 정도의 거리라면 얼마든지 정확히 구별할 수 있고 측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괴테『이탈리아 여행』)

레몬과 오렌지 향을 머금은 나폴리와 팔레르모에 대한 기억은 괴테가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인 향기를 주었다.

로마의 이층집 창가에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괴테.

코펜하겐이라는 익숙한 환경을 떠난 안데르센은 로마에서 자신에 대한 비평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로마에 도착한 안데르센에게 코펜하겐에서의 소란스러운 일들은 마치 별세계의 일들로 모든 것이 사소하고 비정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회화와 조각, 번화가의 모습 등에서 자신만의 감상을 누릴 줄 알았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쓴 안데르센의 일기는 진지하고 열광적인 그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안데르센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하여 감각을 예민하게 단련시키고 시각을 훈련했으며 예술가의 소명에 대한 신념을 굳힌다. 그리고 창조적 에너지로 무장한 안데르센은 1833년의 겨울 동안 오렌지와 선물이 가득 담긴 주머니로 월계수 나무를 장식하여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그러나 흠모의 정을 느끼던 에드바르에게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혹평을 받은 안데르센은 연인으로서의 거절, 자신의 예술성에 대한 거절이라는 이중적 거절을 겪고는 금방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이제 로마는 안데르센에게 더 이상 도시에 대한 감각, 예술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닌 절망과 실연의 도시 가 돼 버린다. 이렇게 연말과 연초를 절망의 병을 앓던 안데르센은 로마에서의 잔인한 경험을 뒤로 하고 나폴리로 향한다. 2월의 겨울 나폴리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한 없이 푸르고 푸른 낙원이었다. 나폴리는 안데르센과 같은 짙은 어둠을 지닌 북구의 영혼에 가장 필요한 도시였다.

나폴리의 느슨하고도 나른한 오후는 특히 안데르센에게 매혹적인 시간이었다. 나폴리의 강렬한 태양을 받은 오렌지는 어둡고 음습한 날씨에 시달렸던 북구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준다. 안데르센은 오렌지와 레몬 나무가 풍기는 오후의 향기 속에서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커다란 레몬 나무와 오렌지 나무 아래를 천천히 산책하기도 하고 노랗게 윤기가 흐르는 과일을 따 반짝이는 햇살에 비추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부드럽게 파도가 치는 바다를 향하여 던져진 오렌지가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기도 한다. 안데르센은 오렌지 나무를 바라보며 황홀감을 느꼈고 그것을 햇빛에 비추어보기도 하면서 오렌지의 빛깔, 냄새를 음미했던 것이다. 이렇게 안데르센은 나폴리의 향기 속에서 환희의 절정을 느끼면서 헨리에테 볼프에게 자신의 새 출발을 알린다.

“가만, 들어보세요. 기타 소리와 함께 세레나데가 들려옵니다. 멋진 밤이에요! 내 영혼이 사랑으로 충만한 느낌입니다. 오랫동안 이 순간처럼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힘든 일을 겪을 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나 행복한 순간의 기쁨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군요. 남쪽 지방의 따스한 내 기운이 내 핏속으로 스며들어요. 하지만 북쪽의 고향에서 숨을 거두어야겠지요. 성경에, 천국의 빵을 맛 본 자는 지상의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다고 써 있듯이, 이제 나도 내가 돌아가야만 할 추운 북쪽 땅에 만족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천국을 보고 느끼게 해 준 신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천국을 꿈꾸고 노래 할 거예요.”

이렇듯 안데르센은 일기와 편지에 실연의 상처, 예술에 대한 절망을 치료해준 남국의 지붕 아래서 피곤하지만 말할 수 없이 행복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고 기록한다.

오렌지를 화폭에 넣어 남녀의 비밀스럽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그려낸 화가는 존 에버렛 밀레이이다. 에버렛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미술, 특히 라파엘 전파가 유행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로 존 러스킨의 친구이기도 하다. 에버렛은 시인 키츠의 애독자이기도 했는데,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임을 노래한 키츠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영향을 받아〈이사벨라〉라는 그림을 그린다. 괴테나 안데르센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오렌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에버렛의 그림에는 오렌지가 불가사의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로렌초와 이사벨라.

귀족 가문의 이사벨라는 오빠의 시종인 로렌초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은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사랑의 비밀을 알게 된 이사벨라의 오빠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로렌초를 숲으로 데려가 죽이고 매장시켜버린다. 애타게 로렌초의 행방을 찾던 이사벨라에게 어느 날 죽은 로렌초의 영혼이 나타난다. 영혼의 부름을 들은 이사벨라는 결국 숲 속에서 로렌초의 시체를 찾아 그의 머리를 항아리 속에 넣어 간직한다.

밀레이는 디테일을 강조하는 라파엘 전파의 양식을 이용하여 두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장치들을 그림 속에 배치한다. 그림 속에서 로렌초는 과즙이 붉은 오렌지를 이사벨라에게 건네주고 있다. 잔인한 오빠들 중 하나는 여동생의 개를 발로 차고 있다. 배경에 놓여 있는 꽃 화분은 로렌조의 죽음이 담길 그릇이다. 그리고 두 개로 나누어진 오렌지 조각은 두 사람의 언약의 상징이나 두 연인이 함께 한 최후의 만찬에 대한 상징이 되지 않을까? 상징이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 다양하기에 오렌지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귤, 레몬, 오렌지는 예술가가 엮어내는 이미지와 스토리에 따라 깨끗함이 되기도 하고 갈망의 이미지가 되기도 하며 사랑의 열정과 죽음 가까이에 있는 만찬의 하나로 기억되기도 한다. 언어와 그림 속에 들어 있는 발광하는 빛의 조그만 과일은 미각과 후각 너머의 또 다른 매개로 예술가들의 감각을 깨우고 전달한다.

객원기자 백금숙(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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