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원 지사 모두 결론 못 내고 정부에 의견 묻기로

중국계 녹지그룹에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에 조성한 녹지국제병원 내부.

외국계 투자활성화 정책 차원에서 추진됐던 국내 1호 외국영리병원 설립 허가 여부를 정부가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정선태, 이하 ‘심의위원회’)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외국계 영리병원의 허가 여부에 대해 각각 최종결정을 유보하면서 특별자치도 본래의 의미도 퇴색됐다.

제주자치도는 중국계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허가 승인 여부에 대해 기간을 또 한 차례 연장했다. 지난달 27일 개설허가 심의기한이 만료됨에 따라 내린 결정으로, 이번이 4번째 연장이다. 심의기간은 공휴일을 제외한 20일 이내로 정해졌기 때문에, 최종 판단을 오는 25일까지 늦출 수 있게 됐다.

그런 가운데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일,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와 가진 신년대담에서 녹지국제병원 개설신청에 대한 허가 여부를 정부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병원의 영리화를 통해 이윤추구로 국민의 의료체계가 희생된다는 염려도 있어 최소한 복지부와 청와대 입장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녹지그룹의 '녹지국제병원' 설립에 따른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이후 녹지그룹은 그린랜드 헬스케어(주)를 내세워 778억 원을 투입해 서귀포시 토평동 일대 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만7678㎡ 규모의 녹지국제병원을 추진했다.

녹지국제병원은 47병상 규모로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과를 운영하고, 이를 위한 인력은 의사 9명과 간호인력 28명, 의료기사 4명, 사무직원 등 92명이다.

녹지그룹은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8월 28일에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의 개설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제주도는 서류, 시설 등 적합여부를 확인(사업계획서상 부합여부 포함)해 적합하면 제주특별자치도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허가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24일 첫번째 심의를 시작으로 12월 26일까지 총 4차례 심의위원회를 열고 녹지국제병원 설립 승인 여부를 심의했다.

심의위원들은 녹지병원측이 제출한 운영계획서를 기반으로 병원의 시설을 점검하고 녹지병원이 병원을 운영할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 여부와, 외국자본이 병원을 통로로 우회투자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영리병원이 내국인을 진료대상으로 삼을지 여부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심의위원회는 마지막 심의가 끝날 때까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심의과정에서 나온 소수 의견과 다수 의견을 구분해 지사에게 전하고 원희룡 지사에게 허가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을 요청했다.

전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9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에 영리병원 개원을 허가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동홍동 주민들이 지난해 11월 24일, 녹지국제병원 정문 앞에서 병원의 조속한 개원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하는 장면.

지난 12월 26일 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받은 제주도 당국은 연내에 허가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릴 방침이었다. 하지만 영리병원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과 일반인의 거부가 큰 점, 녹지병원이 2년여 공사 기간을 거쳐 이미 병원을 완공한 점, 한·중 외교관계 등이 부담으로 작용해 원 지사가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영리병원 개설 허가에 대한 결정이 늦춰지자 이에 대한 도민사회의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다.

헬스케어타운이 들어선 동홍동 주민들은 지난달 2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병원의 조속한 승인을 촉구했다. 이들은 "원희룡 도지사는 녹지국제병원을 조속히 승인해 제주도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를 활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영리화 저지 제주도민운동본부와 참여연대를 비롯한 전국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국내 첫 영리병원 도입 폐지를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병원의 즉각적인 불허를 촉구했다.

이들은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지방차지단체의 자치 사무에 관한 감사 등의 권한을 활용해 국내 의료법인과 관련된 의료인이나 임원이 제주도 소재 영리병원의 운영과 관련된 것에 대해 지도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고, 조례에 규정된 외국 영리병원 허가에 대한 불허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미 병원 건물이 설립된 것이 문제라면 이를 비영리 병원으로 전환시키거나 정부에서 매입해 제주도와 도민의 건강을 위한 공공병원으로 만들라"고 요구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영리병원 담당자는 9일 <서귀포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직까지 제주자치도로부터 영리병원 개설허가 의견을 묻는 공문은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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