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서울에서 펼쳐지는 4.3 70주년 특별전

강요배 불인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333×788 국립현대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관장 김준기)은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해 4․3의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하고 동아시아의 제노사이드를 다루는《4․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와 《잠들지 않는 남도》展을 제주와 서울에서 3월 31일부터 개최한다.

《4․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에서는 제주, 광주, 하얼빈, 난징, 오키나와, 타이완, 베트남 등에서 벌어진 20세기 동아시아의 제노사이드와 관련해 국가폭력의 상처를 조명한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영상 등 총 226점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고, 동시대적인 인권과 평화의 가치로 승화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제노스(genos)와 살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사이드(cide)가 합쳐진 말로서, 고의로 혹은 제도적으로 어떤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집단 학살 범죄를 가리킨다. 전시의 배경이 되는 제주와 광주, 일본 오키나와, 중국 난징, 하얼빈, 타이완, 베트남 등은 전쟁과 정치적 사회적 현실 안에서 폭력과 학살을 경험해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다.

박경훈, 〈토민(土民) 2〉, 1988, 목판, 107.5×110.5㎝
홍성담, 〈오월-13-암매장〉, 1989, 목판, 52×64㎝, 5·18 기념 재단

 

이번 특별전은 역사적 사건 안에 가려진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따라간다. 특히 우리나라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서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캔버스에 담아온 강요배 작가의 ‘불인’이 최초로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이 작품은 제주 4․3 역사화 연작의 마지막 작업으로, 제주도 조천 북촌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풍경을 작품 전면에 채움으로써, 당시의 잔인함과 가슴 아픈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제주 4․3의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광기의 역사에 쓰러진 ‘토민(土民)’의 삶을 표현한 박경훈의 판화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시민군으로 직접 참전했고, 광주를 대표하는 민중미술 작가인 홍성담의 작품 ‘오월’도 소개된다. 5.18과 관련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장면을 판화 연작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해외 입양되었던 제인 진 카이젠의 영상 작품도 소개된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에 머물지 않고, 작가 자신의 개인사와 연결된 역사를 연구하며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다큐멘터리<Remains> 영상을 통해 동아시아 전쟁의 기억과 증언들을 담아냈다.

전시의 시선은 제주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 이웃 나라로 향한다. 중일전쟁 당시 치명적인 생체실험이 행해진 하얼빈 731부대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권오송의 수묵화와 김승의 판화작품도 공개된다. 재중동포인 권오송은 동아시아 역사의 참상을 현대수묵 추상작품들로 꾸준히 표현해 왔다. 또한, 난징대학살 희생자들의 삶을 자신의 예술세계를 통해 표현한 우웨이산의 조소작품들은 사진으로 전시된다. 난징대학살기념관 앞에 있는 이 군상은 우웨이산의 예술적 영혼이 가장 짙게 들어간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중 높이 11.5m의 ‘가파인망(家破人亡)’은 ‘가정은 파괴되고 사람은 죽어간다.’라는 뜻으로 죽은 자식을 안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형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킨조 미노루,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 1972, 플라스틱, 76×70×83㎝
난징 대학살 기념관 피난 행렬

 

일본 오키나와 양민학살의 아픔을 기록한 작품들도 소개된다. 오키나와 전쟁과 전후 오키나와 민중들의 삶·투쟁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온 킨조 미노루의 조각 작품도 함께 공개된다. ‘한의 비’는 전쟁 당시 강제 연행된 조선인 군부와 종군위안부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됐다.

또한, 야마시로 치카코는 식민지 억압을 경험한 오키나와에 머물며 과거 주민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진상을 고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오키나와 전투의 참상을 오키나와 주민의 눈을 빌려 표현하는 동시에, 제주 4․3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타이베이와 베이징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펑홍즈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펑홍즈의 영상작품 ‘200년’은 강요된 민족주의와 일방적인 제국주의의 단면을 폭로한다. 또 다른 대만 작가인 메이딘옌은 작품 ‘2.28’을 통해 대만 국민당 정부가 원주민을 유혈 진압해 28,000명을 학살한 ‘대만 2.28 사건’을 고발한다.

국가·사회의 역사와 그 역사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개인의 슬픔을 주목해온 베트남 작가 딘큐레의 작품도 공개된다. 다큐멘터리 ‘농부와 헬리콥터’는 베트남 전쟁 때 사용된 군사용 헬리콥터가 이제는 농사용으로 활용되는 현실을 전쟁을 경험한 농부의 증언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시 개막일인 4월 2일 오후 5시에는 참여 작가 펑홍즈의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으며, 가수 김마스터가 안치환의 곡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를 예정이다. 제주 전시는 6월 24까지 이어진다.

서울 프로젝트 전시《잠들지 않는 남도》는 제주 4․3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진상규명을 넘어서 제주 4․3의 정신을 대한민국 역사의 보편적 문제로 인식하고 평화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는 공간 41, 대안공간 루프, 성북예술창작터, 성북예술가압장, 이한열 기념관, d/p(이산낙원)등 총 서울 6곳의 장소에서 진행된다. 각 공간은 탐라미술인협회 작가를 포함, 국내 작가 33명의 작품을 각각 선별해 평면, 입체, 미디어, 설치 등 총 6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공간 41’에서는 <잃어버린 말>이란 제목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70년 동안 잃어버린 말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을 그려내며, <제주 4 ․3 미술제>를 통해 제주의 정적을 깨고자 노력한 박소연, 박영균, 배인석, 양동규, 여상희, 오석훈, 전승일, 한항선, 홍진숙 등 9명 작가의 작품이 소개된다.

‘대안공간 루프’에서는 억압과 부당한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주 4․3의 보편적 의미를 담아내는 <잠들지 않는 남도 : 1948, 22719, 1457, 14028, 2018> 전시가 마련된다. 이번 전시는 두 개의 챕터로 구성되며, 총 8명의 작가 강문석, 강정효, 고길천, 김영화, 김영훈, 유비호, 성창학, 정용성 등의 작품들이 공개된다. 전시 기간 중 포럼과 세미나를 통해 지난 70년간 극우 반공주위의 세월 속에서 외면되어온 희생자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성북예술창작터와 성북예술가압장에서는 <너븐숭이 유령> 전시가 열린다. ‘너븐숭이’는 제주 4.3 당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주민이 학살당했던 제주 북촌 지역으로서, 4.3의 상징적 공간이자 시작점이다. 강태봉의 <49년 – 가족>을 비롯해 총 11명의 작가 강정효, 김영화, 김현주, 박경훈, 손정은, 양미경, 오석훈, 정석희, 정용성, 홍진훤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기간에 작가와의 만남이 있을 예정이다.

이한열 기념관에서는 <바람 불어 설운> 전시가 개최된다. 국가 권력에 의한 사회적 고통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는 상처의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김수범, 박경훈, 양미경, 오윤선, 이명복 등 5명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며, 이와 함께 전시 기간에 강연도 예정돼 있다.

d/p(이산낙원)에서는 <경계에 선 것들> 전시를 개최한다. d/p는 제주 4.3의 정신이 70주년을 맞이해 육지로의 확산을 모색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특히 제주 4.3의 기억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육지로 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획이기도 하다. 참여작가로는 권윤덕, 김범준, 옥정호, 이승민, 이재욱, 임경섭 등 총 6명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며, 이와 관련한 작가와의 대화도 마련될 예정이다.

서울 전시는 4월 29일까지 이어진다.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들은 4․3의 상처를 평화라는 인류사적인 보편 가치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전시를 통해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마주하고, 학살의 아픔을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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