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사회 갈등을 초래하며 터널 속을 맴돌던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변수가 떠오르며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해군기지 입지선정 과정에서부터 줄곧 절차적 잘못을 지적하며 반대에 나선 강정마을회측에서 획기적인 카드를 스스로 꺼냈기 때문이다.
강정마을회가 지난 8일 열린 해군기지 관련 임시총회에서 주민 찬반을 거쳐 강정마을의 제안안을 공식 안건으로 채택한 것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주민들이 채택한 제안안에 담긴 내용이 그간의 강경일변도의 반대 노선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계속 주장해 온 명분의 틀 안에서 다소 유연한 입장을 지녔던 까닭에서다.
강정마을 제안안의 주요 골자는 강정을 제외한 해군기지 대상 후보지역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입지타당성을 조사하고, 강정마을을 제외한 도내 다른 지역에서 입지선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제안안은 오는 17일 열리는 주민투표에서 제주도정에 제출할지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다. 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하듯 현재로서는 해군기지 문제의 또 다른 주요축인 제주도나 해군 당국에서도 구체적 논평을 회피한 채 사태의 추이만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실 해군기지 문제는 지난 지방선거를 거쳐 도정의 새 출범과 더불어 행정과 주민들간 소통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도정에서는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해군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도정이 마지못해 따라가는 식이어서 주민갈등의 골만 키워왔다는 지적이다.
강정마을측은 입지선정과 주민 동의과정에서부터 줄곧 절차상 하자를 지적했으나, 해군과 도정은 강정 해군기지는 기정사실임을 들어 소통을 외면했다.
강정마을회가 채택한 이번 제안안에는 무엇보다 과거의 잘못된 행정절차를 지적하며, 일탈된 해군기지 문제를 제 궤도에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어찌 보면 그동안 해군과 도정이 벌여놓은 해군기지 문제를 주민들이 수습하는 역할을 자처하려는 형국이다. 더 이상의 도민사회 갈등을 원치 않으며 정당한 절차를 거쳐 해군기지 문제를 조기에 종식하려는 염원도 깔려 있다.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도민 사회는 오랜 기간에 걸쳐 갈등과 불신이 켜켜이 쌓여 왔다. 일부에서는 도민 사회의 성장과정에 수반되는 진통이라고 치부할지 모르나, 그동안 겪었던 해당 주민들의 고초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고사를 상기하듯 잘못 꿴 첫 단추를 원래 위치로 돌리되, 그간의 잘못된 행정절차는 용인할 수 있다는 강정마을주민들의 진정성이 해군기지 문제해결에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