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읽는 시> 문상금 시인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너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 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시 감상>

국어사전을 꺼내 본다. 두툼하고 먼지 쌓인 그것은 이제 빛바랜 흑백사진 같다. 반듯하지 않고 굽어 있는 길을 에움길이라 씌어 있었다. 그랬구나, 발이 아프도록, 온 몸의 진이 하얗게 소진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것은 실은 너에게로 향한 것이었구나.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드리웠던 두레박만큼 시인의 사랑은 처절했었나 보다.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가시투성이 에움길을 돌고 도는 한이 있어도 사랑할 수 있음으로 행복한 것이다. 수만의 길, 수만의 별, 수만의 사랑 중에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랑할 수 있어서 푸른 밤을 느낄 수 있어서 시인은 참 행복한 것이다. <시인 문상금>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