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떠나는 동화기행>장수명(동화작가)

 ‘바람의 집’

지아는 민호에게 본부의 이름이 바람의집이라는 것, 그리고 봄에 꽃이 피면 엄청 예쁘다는 말과 함께 아주,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분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지아와 민호는 곧 친해졌다. 마치 오랫동안 알던 친구처럼 금세 가까워졌다. 지아는 민호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착한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민호 웃는 모습은 마치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민호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지아는 민호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너 우리 엄마랑 많이 닮았어. 널 보고 있으면 우리 엄마가 생각나.”
느닷없는 말이었다.
“뭐?”
화등잔만큼 커진 눈으로 지아가 물었다.
“내가 네 엄마를 닮았다고? 난, 네가 우리 아빠를 닮았다고 느꼈는데.”
참 이상했다.
‘민호는 아빠를 닮았는데, 나는 민호 엄마를 닮았다니…….’
“우리 혹시 친척 아닐까?”
지아와 민호가 동시에 같은 말을 뱉었다. 그때 갑자기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본부바람의집을 흔들고 지나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민호와 지아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귀를 바닥에 댄다. 그리고 둘은 마주보며 까르르 웃는다. 조금 전 조금은 심각했던 생각들은 곧 잊어버렸다. 둘은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내년 봄에 민호의 본부를 만들 계획’
바람의집 옆에, 민호가 외가댁에 올 때면 언제나 민호만의 비밀장소를 마련해두기로 했다.
“바람의집에 사는 바람아이.”
민호는 갑자기 지아를 그렇게 불렀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지아야, 바람의집도 멋지고, 너 정말 멋지다.”
“…….”
지아는 부끄러웠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너무 좋다. 또래 아이로부터 들어보는 칭찬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기죽어 있는 지아를 아무도 그렇게 불러주지 않았고, 함께 잘 어울려 놀아주지도 않았었다. 
민호와 지아는 날마다 본부로 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 종일 본부에서 생라면을 뜯어 먹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이야기로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가끔 민호가 보온병에 물과 컵라면을 가지고 오는 날이면 완전 땡 잡은 날이었다.
지아와 민호는 거의 매일 바람의 집에서 만나다시피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한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더위는 한층 깊숙이 파고들어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뜨거운 태양이 온 집안을 꿀꺽 삼킨 것 마냥 이글거리며 마당으로 찾아들었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밖으로 나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어둠을 끌어다가 집안으로 들여다 놓아야 집으로 돌아오는 지아를 큰언니 지민이가 불러 세웠다.

“지아, 오늘 나가지 마.”
“…….”
딱딱히 굳은 큰언니 표정이다. 지아는 지민 언니의 저 표정이 제일 무섭다. 속이 보이지 않는……, 무표정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여름날 계곡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아무 대구도 없이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선 지아를 향해 지민 언니가 방으로 들어가라며 생소리를 질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후다닥 제방으로 들어온 지아. 
“후우~.”
깊은 숨을 몇 번 몰아쉬지만 두려움에 떨었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지아는 지민언니의 화난 듯 한 목소리만 들으면 저도 모르게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잠시 후, 지민언니가 지아방으로 들어왔다.

“방학 숙제는 다 했니?”
책들과 잡동사니들로 어질러져있는 지아의 앉은뱅이책상을 지민이 언니가 뒤적거리며 물었다.
“아직…….”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뗀 지아 얼굴로 지민이 언니 레이저눈빛이 쏟아진다.
“방학이 얼마 남았다고 아직도 다 못했어. 통신문이랑 숙제한 거 챙겨줘.”
“지금…….”
“빨리 줘.”
자동반사.
지아는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프로그램 된 로봇처럼 책상위를 뒤적여 제 방학숙제노트를 찾아냈다. 그리고 통신문은 아무리 찾아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거……, 그런데 통신문은 못 찾겠어. 안 보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마치고 노트를 지민이언니 앞으로 내밀었다.
“온종일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조그마한 계집애가 이해가 안 돼.”
아빠도 엄마도 없는 집에서 유일하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인 지민이 언니.
“요즘, 어디를 그렇게 쏘다닌 거야? 누구랑?”
‘잡드리’
오전 12시가 지난 고양이 눈보다 더 무서운 눈으로 지민언니가 쏘아보며 묻는다. 자칫하다간 지민언니에게 오늘 제대로 혼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지아는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며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그게…….”
“빨리 말해 봐.”
“누구랑 다녔냐면……”
지아는 미처 말을 다하지 못하고 또 꼬리를 남긴다.
“질질 빼지 말고 또박또박 말을 해.”지민이 언니 앙칼진 목소리가 지아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미, 민호라고 서울에서 온 남자아이가 있는데.”
숨이 가빴다. 한꺼번에 속사포로 쏟아놓았다.
“서, 서울?”
서울이라는 말에 지민이 언니가 반응을 했다. 지아는 민호 이야기를 했다.
“큰언니, 있잖아……. 민호라는 서울 사는 남자아인데…….”
지아는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흘리며 얼버무린다.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불쑥 말을 꺼냈다가 혹시 민호랑 못 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본부 ‘바람의 집’은 지아만의 세상인데 언니한테 말했다가 그 세상이 사라질 것 같기도 하고…….
“휴우…….”
“말하다가 말고 웬 한숨이야?”
지민이는 지아의 얼굴을 빤히 건네다 본다.
‘그 남자아이를 좋아하나보네.’
지민이는 지아가 다시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 참을 망설이던 지아의 입술이 달삭달삭 거린다.
“어서, 말해 봐.”
“…있잖아…….”
다시 입을 닫는다. 기다리다 못한 지민이가 불쑥 말을 꺼낸다.
“너, 그 남자아이 좋아해?”
무슨 말이냐는 뜨악한 표정으로 지아는 지민이의 얼굴을 올려 다 본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나 아무도 안 좋아 해.”
지아가 질색팔색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 아이, 참 이상해. 아빠를 많이 닮았어…….”지아는 아버지를 닮은 민호이야기를 순식간에 실타래를 풀어헤치듯 풀어놓았다. 지아의 이야기를 듣던 지민이 언니 표정이 바뀌고 눈빛은 흔들렸다.
“……아버지를 닮았어?”
지민언니가 되묻는다. 대답대신 고개만 주억거리는 지아. 아버지가 집을 비운지 꽤 오래되었다. 아버지를 닮은 아이……. 지민언니는 민호가 꽤 궁금한 모양이었다.“지아야, 그 아이 집으로 데리고 와봐.”
“정말? 집에 데리고 와도 돼?”
지민이 언니는 오늘 데리고 오라고 했다. 라면 맛있게 끓여 주겠다는 말도 한다. 지아의 두려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눈 녹듯이 싹 사라져 버렸다. 큰언니가 민호를 보고 싶어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오늘?”
“그래, 오늘 데리고 와.”
“그럼 나, 나갔다와도 돼?”
하마터면 민호에게 인사도 못하고 못 만날 뻔했다. 그런데 집으로 데리고 오라니, 라면도 끓여주겠다니, 지아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알았어. 조금 있다가 민호 데리고 올게.”
지아는 쏜살처럼 달음박질을 하며 바람의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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