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지금 이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길

수미씨가 아픈 지 한 달이 다 되고 있었다. 왜 아프지 않으랴,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세 아이의 어머니로, 농사일에, 가게일까지, 50이 넘은 나이에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딱히 병명이 안 나오는 병이고 보면 마음의 병일진대, 식욕이 없다니 맛난 것도 소용없고, 의욕이 없다니 기분전환 거리를 만들 수도 없고, 그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뜻밖에 나의 초대에 선뜻 응한 그날, 그녀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왔다. 공연장 로비는 사람들로 붐볐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와서 공연을 기다리는 그들의 설레임으로 로비 안의 분위기는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개중에는 우연히 만나 마치 이산가족 상봉처럼 반가움의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 오니 사람 사는 것 같네요.  제가 젊어서부터 가장 좋아하는 가수예요. 애 아빠가 청혼할 때 불러준 노래도 양희은 노래였어요.

아, 그래서 단박에 오케이를 한 거였구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자 수척한 수미씨의 얼굴이 웃음으로 빵빵해졌다. 그래, 이 얼굴이야. 내가 기억하는 수미씨는 늘 웃는 얼굴이었지. 

 한계령으로 시작한 무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한 사람> 등 싱어롱으로 이어질 때 수미씨도 열심히 박수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부디 수미씨가 지금 이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길, 그 기분이 몇 일이라도 유지되길, 그래서 이 고비를 딛고 일어설 밑천이 되길. 내 바람이 기도가 되었을까. 그날 가수의 앵콜 인심은 이례적이라 할만큼 후했다.

무슨 노래가 듣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저마다 제 가슴속의 노래를 소리쳐 주문했다. 수미씨는 들길 따라서를 몇 번이고 외치고 또 외쳤다. 혹시 남편의 청혼곡이 이 노래였을까? 앵콜곡이 여럿이었음에도 애석하게 그녀의 신청곡은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오히려 다행이었다.

창문을 열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아하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청춘과 고독의 뒷장 넘기며...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지금의 그녀에게 딱 맞는 노래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늘 공연 보여줘서 고마워요. 제가 밥 살께요. 언제가 좋으세요?

공연이 끝나고 헤어지는 길에 수미씨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오늘 여기 나온 것도 힘들었을텐데... 나중에 해요.아니예요. 이제부턴 좀 나을 거 같아요. 힐링, 힐링 말만 들었는데 오늘 제가 받은 게 힐링 같아요.

나도 모르게 수미씨를 껴안았다. 수미씨도 나를 받아 안아주었다. 알고 지낸지 5년이 넘었지만 이런 따듯한 포옹은 처음이었다.

요즘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같이 노래 부르면서 힘이 났어요.

얼굴도 아니고 뒤통수만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수미씨의 외로움을 날려버린 것 같았다.

세상에는 외로운 수미씨가 얼마나 많을까. 그날 공연장에도 분명 여러 명의 수미씨가 있었을 것이다. 노래를 통해 젊을 때의 감성을 기억하고, 노래를 통해 함께 나이들어 가는 또래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래서 삶의 무게를 다시금 짊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인생길에 함께 늙어갈 노래와 가수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세상의 외로운 수미씨들이여! 그대 가슴 속의 노래를 기억하시라. 그리하여 부디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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