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 이 옥 자 / 수필가

내게는 시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물건이 하나있다.
유서 깊은 화류장농이나 귀목반다지인 골동품이 아닌 예전의 생활도구이다.할머니에겐 몇 가지의 세전지물이 있었다. 오동나무궤짝과 놋그릇들은 시어머니와 시고모님 몫이었고 손자며느리인 나에겐 풀 바른 구덕 몇 개와 ‘되악새기’를 물려주셨다. 늘 “시어멍신디 족 숟가락 하나 물려받지 못 핸.”하시며 입에 달고 사신 할머니가 할머니의 시어머니로부터 물린 ‘되악새기’를 치마폭에 감추고 오셨다. 할머니의 큰 인정과 사랑으로 내가 주인이 되었다.

되악새기는 ‘됫박’보다 작은 것이다. 쌀 항아리에서 쌀을 꺼낼 때 셈하는 것으로 세 번을 담아야 한 됫박이 된다. 됫박은 세 번을 담으면 한 말이 되는 것이다.이와 비슷한 물건이 또 하나 있다. ‘솔박’이다. 솔박은 곡식을 퍼 담는 도구이다. 곡식의 겨를 분리할 때에 요긴하게 쓰인다. 70년대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무엇이든지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길. 지붕. 변소. 그릇들도 단장되었다. 대대손손 내려오던 놋그릇들은 가볍고 산뜻한 스테인레스로 바뀌었다. 엿장수들은 엿 몇 가락에 낡은 것들을 모두 가져갔다. 우중충한 집안이 밝아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십 년 안 되어 옛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산재해 있던 놋그릇과 질그릇. 항아리들은 수집가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귀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할머니의 소중한 것을 받으면서도 기쁘지가 않았다. 쌀통이 몇 인분인지를 정확히 가늠해 주었고 콩을 털거나 보리를 깔 일이 없기에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 이듬해 돌아가셨다. 청산과부로 한평생을 사시면서 세간이 너무나 빈곤하여 거두고 치울 것이 없었다. 흑갈색의 윤이 반지르르한 ‘되악새기’를 장식장에서 꺼냈다. 숨쉬는 황토 쌀 항아리를 하나 들였다. 그 속에 되악새기를 넣었다. 밥을 할 때마다 쌀을 푼다. 할머니 인정이 포근해지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긴다. 윤기가 많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몇 대를 내리는 물건 앞에 옷섶이 여미어진다.

나는 이 물건을 며느리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시할머니의 고단했던 삶도 한 소절 엮을 것이고 시어머니의 삶도 양념을 칠 것이다. 부자냐 아니냐는 그의 소유물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없이 지내도 되는 물건이 많고 적으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제 내 살림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 있어 나를 소소한 기쁨에 놓이게 하고 있다. 쓸수록 정이 간다. 할머니의 손길, 숨소리 한숨의 질곡이 배어 있어 더욱 정이 간다.

창문을 여니 가을바람에 대나무가 스스스 몸을 부비는 소리가 마음으로 들어선다. 대나무도 할머니가 분갈이 해주신 것이 이제 숲을 이룬다. 옥빛 하늘에 걸린 흰구름도 한가하다. 가을볕에 귤 알이 토실해지며 주황빛이 곱다. 평화롭고 아늑하다. 내일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늘이 행복하다.
아낙의 지혜롭고 총명함은 머리를 쓸 때가 아니라 마음을 쓸 때 발휘되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이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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