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성 기자

제주도의회가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가 제출한 추가경정 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추경 예산안 처리를 위한 ‘원 포인트’ 의회는 2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다. 도의회는 설 민심을 반영, 소모적 논쟁 대신 추경 예산안 처리를 선택했다. 도의회가 예산 갈등 정국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발 물러선 형국이다.

도의회의 방향 선회로 지난 1일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추경 예산안 조속 심의와 원만 처리를 약속했다. 도의회는 ‘증액 없는’ 예산 심의를 천명했다. 그러나 ‘증액 없는’ 심의는 이번 추경 예산안으로 국한시켜 ‘발등의 불’만 꺼졌을 뿐이다. 도와 도의회 간 예산 갈등의 불씨가 완전 진화 되지 않아 다시 점화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예산 갈등은 타시·도와 달리 기초의회가 없는 특별자치도 특성상 도의원들의 지역현안 해결을 위한 민생예산 반영에서 비롯됐다. 도는 지방자치법 조항을 들어 ‘동의 없는’ 증액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도의회는 자생단체의 경우 '일몰제' 적용으로 전년 예산에 반영됐더라도 새해 예산에 새로 편성할 수밖에 없어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예산 갈등은 민생예산 반영이 미흡하다는 도의회 입장과 제대로 반영됐다는 도 입장의 충돌이다. 입장차 해소를 위한 근본적 처방 없이는 예산 갈등은 재연될 수밖에 없다. 추경 예산안 처리 후 도와 도의회가 정책협의회를 통해 예산 개혁 방안 등 현안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일부 의원은 도가 ‘동의 없는 증액 불가’ 입장을 고수한다면 정책협의회 가동에 반대하고 있다. 접점 찾기가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를 이끄는 수레바퀴로 비유된다. 그러나 도와 도의회는 지속된 예산 갈등 속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의 정치력 실종이라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줬다. 대화와 타협을 위한 노력보다는 정치적 신념으로 포장된 고집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힘겨루기만 있었을 뿐이다. 상당한 학습비용이 소모됐고, 도민들의 피로만 누적됐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산 갈등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으로 인해 학습효과가 무용지물 되고, 도민들만 만성피로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는 게 문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가변적 운명에 대한 인간의 유연성 결여를 지적하면서 “지도자는 상황마다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며 공존·화합을 위한 유연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목소리를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유연한 리더십은 결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도민사회의 이견 조정은커녕 자신들의 입장차도 해소하지 못하는 도와 도의회에 대한 도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璨)은 ‘신심명(信心銘)’에서 귀근득지(歸根得旨) 수조실종(隨照失宗)이라고 했다. 문제의 근본으로 돌아가면 실재를 볼 수 있고, 현상을 따라가면 핵심을 놓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보려고만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보여 지도록 조건을 먼저 맞춘다는 뜻이다. 대립하고 있는 상대를 끌어안으려면 소통 이전에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만물이 생기를 되찾는 봄이다. 도와 도의회가 상생의 리더십을 발휘해 전진을 위한 화해의 봄기운을 도민들에게 선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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