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서귀포에 갓 이사와서 신기한 것 중 하나가 목욕탕이 많은 것이었다. 우리집에서 걸어 갈 수 있는 목욕탕만 해도 예닐 곱개가 된다. 인구 수에 비해 목욕탕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목욕탕 주인도 아니면서 괜한 영업 걱정까지 했는데 그게 기우임을 곧 알게 되었다.

가게일에 귤농사에 집안 살림까지 1인 3역을 하는 동네 언니는 목욕탕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이른바 달목욕. 이런 여자들이 한 두명이 아니라고 했다. 한번은 그 언니와 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고, 잘도 오랜만이다"하면서 누군가를 붙잡고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는 그이의 가족안부까지 물었고 그이는 언니에게 '누구는 어떻게 지내냐'며 여러사람의 소식을 물었다. 동창생 같았다. 헤어진 다음 어느 학교 때 동창이냐고 물었더니 깔깔 웃으며 '같은 목욕탕 동창'이라고 했다.

목욕탕은 여자들에게 휴식처인 동시에 사교장이었다. 사실 목욕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만만한 문화공간이다. 애나 어른이나 물놀이는 즐겁다. 물과 함께라면 몸과 마음의 긴장이 쉬 풀린다. 그리고 목욕탕은 집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더구나 빈부와 직위의 차이가 드러날 수 있는 옷따위는 다 벗어버리고, 만인이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니 특별한 해방감마저 있는 게 목욕탕의 매력이다.

나는 이 목욕탕 놀이 문화가 재미있고 일리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절대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서  놀랐다.

"목욕탕에 모여서 여자들 하는 소리가 맨 남의 뒷담화야. 같이 목욕하다가 그 사람이 나가면 돌아가며 그 사람의 형제, 자매, 집안내력까지 쭉 꿰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도마 위에 오른 생선이 되는 거야, 무서워서도 목욕 못 간다게. 너도 얼굴 알려진 사람이니까 조심해"

그런데 겨울을 나면서 서귀포의 습냉한 바람 탓인지, 감기인 듯 감기 아닌 몸상태가 몇일 계속되면서 결국 목욕탕을 찾게 되었다. 더운물에 몸을 푹 담그는 그 맛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달목욕을 끊기에 이르렀다. 매일 목욕탕을 가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뭍에서는 팔자좋은 여자들이나 하는 '호사'를 내가 누리다니, 너무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목욕탕에서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 일요일이었다. 겨울 내내 휴일도 없이 선과장에 일을 다닌 언니가 하루 쉰다며 목욕을 가자고 했다. 나는 붐비는 날이라 피하고 싶어서 아침에 이미 샤워를 했고 더구나 머리를 감다가 욕조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정수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언니는 집과 선과장만 자동차로 오간 터라  동네지리에 어두웠다. 길안내만 해 줄 요량으로 나섰는데, 목욕의 하이라이트는 등밀기가 아닌가. 할수없이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샤워기로 몸을 물에 적신 후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역시 이 맛이야, 행복감이 밀려왔다. 지그시 감고 있는데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같이 욕조에 들어있던 아주망이 공중에 대고 뭐라고 하는데 빠른 제주어에다 욕탕의 울림으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간 낯을 익힌 때미는 아주망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통역을 해 주었다. 헉, 당황스럽게도 나를 향한 항의였다. 내가 샤워만 하고 머리 감지 않고 입수하여 물을 더럽힌다는 요지였다.

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다소의 억울함으로 그 아주망 곁으로 가서 변명을 했다.'제가 머리를 다쳐서...'라고 환부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그러면 욕조에는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한번 혼날 것을 긁어서 한 번 더 혼난 셈이 되고 말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언니는 '저런 군기반장이 있어야 공중목욕탕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법'이라고 나를 다둑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머리 안 감고 들어오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는 사람은 봐주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엄격한' 이른바 궨당심리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물관리도 좋지만 '머리를 감고 들어오라'고 좀 친절하게 말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몇일 후에는 목욕탕에서 횡재를 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자원해서 내 등을 밀어준 것이다. 그리고는 딸이 같이 오기로 해서 우유를 두 개 샀는데 못 오게 되어 남았다며 우유까지 건네주는 것이었다. 내가 궨당도 아닌데.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목욕탕은 나에게 '여성심리'를 배우는 학습장이 되었다. 여자들이 남의 말을 하는 것은 공동체적인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이웃집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르는 냉정한 개인주의보다 훨씬 인간미가 있는 것이다.

또 좁은 지역사회에서 공동의 대화거리가 다양하지 않으니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내용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 털기보다 다독거리기라면 좋을 것이다. 친한 사람들과 수다로 가슴에 쌓인 한을 푸는 건 꼭 필요한 또하나의 목욕이다. 다만 이왕이면 작은 소리로. 그리고 가끔은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면 목욕탕에 가는 의미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고대 스페인의 정치사에는 '우물정치'가 있다. 여자들이 우물에 모인 김에 지역사회의 현안문제를 의논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서귀포 역사에 '목욕탕 정치'가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을까?. 나는 오늘도 목욕탕에 간다. 욕탕의 여인들을 만나러. 그들의 말 속에서 인생의 한수를 배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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