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교육자

서귀포시 강정 섯 동네 마을 앞에 “아웨낭목”이 있다. 이곳은 이 동네에 살아오셨던 옛 어른들의 애수와 함께 근 300여년을 이어오면서 애지중지 가꾸어 우리들에게 물려준 소중한 유산이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위로 하늘을 우러러 그 현묘한 이치를 살피고 아래로 땅의 기운을 보고 느껴 그 성하고 쇠하는 도리를 깨달아 집터와 묻힐 자리를 선택해 왔다. 쉬운 우리말로 “터”라고 한다. 터는 우리들의 삶과 죽음의 뿌리가 되는 공간이요 정신세계의 집으로 믿어왔다.

선인들이 이러한 터를 존중해 온 까닭은 우리의 땅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조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산에 오르던지 심산유곡에 잠시 머물었을 때 우리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도취될 때가 있다.

이러한 자연에서 삶을 영위하던 우리의 선인들은 천, 지, 인이 하나로 이어진 자연철학을 찾게 된 것이다. 기상천외하고 경천동지 할 일이 생기면 높은 산꼭대기나 맑은 물가, 큰 나무 밑에서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천제를 올렸던 것이다.

서양의 저명한 고고학자들이 나일 강변의 피라미드를 고산숭배 사상의 유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견해라고 풍속학자가 높이 평가한 글 대목이 생각난다. 자손만대에 누릴 집터를 잡는데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통념일 것이다. 물(큰 강정물, 통물)따라 이곳을 찾아 주변지형을 살펴 허한 곳에는 잣담을 쌓아 막고 나무를 심어 기를 살리면서 살아 오셨던 자취들을 볼 수 있다.

그중의 한 곳이 “아웨낭목”이다. 강정 섯 동네 마을 앞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에도 있다. 이웃 월평마을 앞에 소나무 숲을 이루어 마을 앞 목을 푸르름으로 지켜주고 있는 것도 풍수사상에서 연유할 것이라고 한다. (법환 마을 묵골, 애월 납읍마을 금산 공원) 바람과 물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살아 온 선인들의 지혜를 더듬어 보면서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과학문명 속에 살고 있는 오늘에도 삼재는 큰 재난으로 봐 정밀 위성 관측을 통하여 예보하고 있으나 인력으로 방제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알고 있다. 화재 수재 풍재를 극소화하기 위한 지혜가 모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네 마을 앞이 너무 허하니 재물이 물 흐르듯이 없어진다는 데서 2미터 높이 잣담을 쌓아 올려 각종 나무가 자생하여 자연 풍치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동쪽에는 두 아름이나 되는 노송과 팽나무 두 그루가 길게 가지가 뻗어 누가 봐도 거목임을 알 수 있었다. 애들은 폭 따먹기에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어릴 적에 언제면 저 팽나무에 올라가 마음대로 누벼 다닐 수 있을까 했던 그 소망은 해가 거듭하면서 이루어졌다. 군대 유격훈련에 겪은 과정보다 유연성과 담력 키우기에 월등한 자유놀이 이었다.

나무 밑에서는 어른들이 짚을 치고 먹 돌 판에 두둘겨 대는 덩두렁 막개 소리와 매미소리가 한데 어울려 “아웨낭목”에 메아리 쳤다.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으면서 정담을 나누었던 어른들의 모습이 한 폭의 풍속도로 그려져 있어 더욱 애처로워진다.

서쪽 골세 물에는 새우, 게, 송사리, 은어, 장어 개구리 등 일급수 수중생물이 서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회에 빠질수 없는 토종 미나리가 자생하고 있어 횟자리 사들고 오다가 한줌 뽑아오고 했다. 서쪽 개울 하류에 잣담으로 둘러 만든 물통에 몸을 식히며 등을 맞대고 한담을 나누어 왔던 그 어른들도 세월과 함께 물길 다라 가셨다. 동쪽 동산 밭에 묻혀있는 큰 생 바위까지도 함부로 깨지 못하도록 해 지주들도 농사짓는데 불편하면서도 공동체 생활을 위해 보존해 왔다. 앞밭에는 큰 왕석 세 개를 간격을 두어 세웠다. 그 당시 이런 왕석을 운반해 세운다는 것은 대단한 역사(役事)이었다. 아마 섯동네 마을 장정들이 며칠을 걸려 옮겨왔을 것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지주가 바꿔지면서 경작하는데 지장이 막심하다며 자의로 석공을 불러 이 왕석을 깨려고 할 때 민원이 야기돼 동네주민이 그 피해를 보상하기로 약정돼 1990년대까지 제자리에 보존돼 왔다.

제주 4.3이 나면서 옛 선인들의 숨결과 함께 300여년을 이어온 “아웨낭목”에 큰 수난을 당했다. 무장대 침입에 방비하기 위해 제주섬 전역에 마을인가 주위를 두른 축석명령이 군 당국에서 고시되었다. 이 아웨낭목 지점이 축성성곽이 돼 잣담은 성담에 쓰이고 이때 거목 일부가 잘려버렸다. 그 이유는 무장대가 그 나무 위에 올라가 마을 안을 표적삼아 총격을 가하게 된다는 군 당국의 작전 오판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거목이 짤려 나간 것은 제주 4.3의 상흔으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그래도 노송 한 그루는 옛 풍상을 자아내고 있다.

골세 개울 상류 수원이 고갈되면서 구명(鳩鳴)물 줄기도 말라버렸다. 맑은 물이 흐르던 그 개울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악취가 풍기고 외래 잡초만 우거져 옛 모습을 현 상황으로서는 복원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런 와중에 1990년대에 시청 주관 사업으로 흔적 없이 복개되고 말았다. 근간에 소하천을 되살린다니 만시지탄이나 그래도 다행이다.

강정마을 청년회에서는 2000년대 이 “아웨낭목”을 복원하려고 옛 모습을 고증 받아 잣담을 쌓아 올려 세 개의 왕석도 그 위에 옮겨 놨다. 그러나 그 곰고의 웅장한 정취는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눈앞의 돈벌이와 인륜도덕을 내던지고 자연환경을 파괴하기에 급급하니 땅이 이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지를 미쳐 깨닫지 못 하는 것이다. 여기에 유래표석이라도 세워 후 세대들의 푸른 숲으로 가꾸어 값진 유산으로 보존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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