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리이웃들 - 고졸 검정고시 합격 오석학교 강춘화씨

배움의 기쁨을 노래한 이들은 많지만 강춘화씨만한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일흔 하나의 나이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무난히 통과한 고령의 열정이 아름답다. 기세를 몰아 지역 관광대학교 야간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다.

소년들에게 책 천 권을 읽게 되는 기쁨을 전하기 위해 인터뷰에 나선 강춘화 할머니. 사람의 생은 대부분 희노애락으로 점철되지만 그녀의 삶은 분노와 아픔으로만 가득찬 삶이었다. 7살에 시작된 앵벌이 시절에는 해산물과 나물 등 부산 시장 구석구석, 어느 한 곳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다. 잦은 매질에 그녀의 등은 산산조각이 났고 거친 피고름으로 옷을 벗고 입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대나무를 엮어 만들어 해산물을 지고 나르던 통대야는 늘어난 물로 무게만 15kg. 이것을 메고 움직이던 어린 소녀의 삶은 가난한 조국만큼 처참했다. 계속 제주와 부산을 오가며 계란에 전복, 소라, 마늘, 밀감 장사까지 안 해 본 것이 없다. 하고 싶었던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그렇게 청춘은 석양과 함께 할머니를 떠나가버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치유한 건 지역의 오석학교였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 초등, 중등, 고등 검정을 합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년. 하루 여덟시간 이상의 감귤 농사를 하루도 걸른적이 없었다. 졸려서 정신을 못차리는 밤 7시 야간 수업에도 단 한 번 빠진 적이 없었다. 성공 비결은 그냥 노력뿐이었다.

강춘화 할머니는 “나를 지금까지 이끈 건 ‘서럽고 아팠던 삶에 대한 통쾌한 복수’였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에 맞춰 부산으로 돌아온 게 2살. 그후부터 14살까지, 기억을 더듬으면 나의 유년시절은 막막한 노동과 학대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대한 기억과 아픔을 치료해 준 것은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망이었다”고 회고한다.

할머니는 “재미있고 배울 것이 많은 오석학교는 천국이었다. 덕분에 남들은 10년에도 힘들다던 초, 중, 고등 과정을 2년 만에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학습에 대한 열망은 팔순이 다 되어도 끊이지 않을 등불로 남을 것 같다. 청소년들에게 천 권의 책을 읽게 만든다는 할머니의 전언이 에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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