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지상에서 하늘까지

창호문을 두드리는일단의 새 소리에 벌떡 깨어나이슬 젖은 논길을 헌걸차게 내딛는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네삼복염천의 한낮에알 밴 팔뚝을 검게 구우며곡식 포기포기를 끝없이 쓰다듬는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네그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벼들이 한 뼘씩이나 자라고그 사람 손길 한번에온갖 것들이 일파만파로 사운거리고산 능선 선명해지는 해거름 녘그 사람 문득 허리를 펴면모든 들과 산과 나무와 풀도 함께우수수 몸을 털며 새삼 새로워져푸르디 푸른 그 잎새들 끝에맑은 수정방울을 달곤, 무한궁륭에빛을 쏘아 별들을 깨우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네 고재종, ‘지상에서 하늘까지’ 전문감상노트 자신을 썩히면서 자식을 살찌우는 두엄자리 같으신 분, 그 누구이던가. 가진 것 죄다 내주면서, 몸과 영혼이 베이면서, 묵묵히 새벽의 찬이슬 털며 굽은 등을 펼 사이도 없이 흙과 씨름하시던 그 분. 곤한 잠에 빠져있는 우리의 이부자리를 덮어주시고, 헐어빠진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셨어도 정겨운 눈빛만은 엄동의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위대한 아버지 농부여. 울울한 마음의 울음소리와 슬픔을 대신 감싸주며 허공의 길을 마다 않고 걸으신 분. 지상에서 저 하늘까지 목놓아 호명하고 싶은 아버지는 오십년지기 박토의 인생뿐이었다고 그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크고 너른 손길이 몸서리치듯 그리워진다. -양인숙(시인)제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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