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넌 어느 별에 살고 있니?토렌 차일드 지음/조은수 옮김/국민서관클라리스 빈은 좀 못말리는 구석이 있는 여자앱니다. 학교가 끝나면 미친 사람처럼 뛰쳐나오고 종종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에 늦기도 하지요. 그런데다 좀 도도하기까지.... 늘 클라리스 빈을 따라다니지 못해 안달하는 옆집 남자애를 무시하곤 하지요. 하지만 신나고 중요한 일에는 빠지지 않는 분별력이 있답니다. 그래서 학교 숙제를 하지 못하면서도 나무 위에 올라가 있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날도 클라리스 빈은 숙제를 하려 애썼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속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전 뛰지 않던 오빠가 뛰어들어오며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신문에 동네 거리의 나무들을 잘라낼 계획이 발표되었다는 것이지요. 백 살도 더 넘은 근사한 나무들을요. 밥맛도 잃을 정도로 분노한 오빠는 마침내 친구와 함께 “지구 파괴를 막기 위한 행동 계획을 짜기로” 합니다. 차라리 오빠 방에서 일어나는 파괴를 막을 행동 계획이나 짜면 좋겠다고 아빠가 우려를 하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은 채 오빠는 친구와 함께 행동에 들어갑니다. 나무 위에 캠프를 치고 나무를 지키기로 한 것이에요. 그러나 나무 위에 올라간 건 오빠들만이 아니었어요.할아버지는 보온병을 들고, 엄마는 걱정이 돼서, 언니는 함께 캠프를 친 오빠 친구가 보고 싶어서, 클라리스와 동생은 운율에 딱 맞춰 “나무 놔둬”라고 쓴 팻말을 들고, 아빠는 나무 위의 식구들에게 스파게티를 먹이기 위해....결국 온 식구가 나무 위에 올라가게 됐지요. 할아버지부터 늘 스파이더 맨 옷을 입고 있는 동생까지 클라리스네 온 가족이 나무 위에서 ‘시위 놀이’를 하는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는 순간, 책은 재빨리 힘을 씁니다. 웃는 독자들로 하여금 나무가 짤리는 일에 분노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컨셉은 한 마디로 ‘못말려!’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하나같이 못말리지요.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인 할아버지조차! 슈퍼마켓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며칠이고 쌩쌩 달릴 수 있는 호주의 넓은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동네 거리 나무 아래서 세상이 왔다갔다 하는 걸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여유로운 할아버지는 좋아하는 자연프로그램을 보면서 샌드위치에 넥타이를 넣고 잼을 바르는 못말릴 짓을 합니다. 거기다 클라리스를 늘 따라다니는 주요한 조연, 로버트 그랜저도 만만치 않지요. ‘달팽이와 굼벵이 가운데 누가 빠른지’와 같은 시답지 않은 과제를 연구하겠다고 덤빕니다. 이밖에도 줄줄이 이어집니다. 궁금하다구요? 책을 펼쳐보세요. 첫장부터 아이들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눈동자가 어느 쪽으로 가 있는지를 잘 살피면서 책장을 넘겨보세요. 어느 쪽으로 못말릴 성격인지 파악하기가 훨씬 쉬워진답니다. 김지숙(어린이책 출판기획자)제492호 (2005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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