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의 문화사를 시작하며 
저녁 무렵, 어둠이 깔리며 멀리서 태양이 지고 있었다. 태양의 반대편 쪽으로 주황색의 귤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마당의 램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데, 어린 아이였던 나는 마당에 불이 켜진 것이라고 그냥 상상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귤이 열려 있는 곳은 확연히 밝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강렬함이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지 정말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고 전과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그 농가 앞을 또 지나게 되었다. 좀 의아스러웠다. 기억의 힘이란 이렇게 강한 것일까? 마당의 램프는 그 비바람 속에서 아직도 켜져 있었던 것이다. 층층이 뒤덮인 귤잎들이 비를 맞아 반짝이고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 귤 하나가 전등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마 해마다 그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으리라.


 그 마당의 램프는 먼 기억을 거슬러가 귤나무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땅에 왔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토록 귤나무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귤처럼 강렬한 과일색이 있었던가? 처음에 나를 유인한 건 오로지 그 귤 색깔이었다. 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빛에 가까웠다. 발광하는 빛. 이제 그 빛에 이끌려 먼 여행을, 귤나무가 어느 곳엔가 뿌리를 내려 지금에 이른 멀고도 아득한 식물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유대교와 이슬람에 스며든 귤의 역사
식물들은 원산지로부터 아주 먼 여행을 한다. 바람이나 해류, 새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이동을 하거나 우연한 사건으로, 혹은 여행자의 주머니에 숨겨진 채 이동하기도 한다. 귤나무의 시작인 시트론은 오늘날의 인도 북부에서 아직도 야생 상태로 자라고 있다. 시트론의 여행은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으로 인도를 정복한 후에 그리스로 향하였고 점차적으로 그리스 식민지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시트론 나무들을 전파하였다. 또한 시트론의 다양한 변종은 아프리카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동으로 확대되었고, 이어서 북아프리카와 서유럽으로 여행을 하였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남유럽에서 서유럽으로,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된 자취를 볼 수 있다.


귤의 이동경로에는 그것들이 도달한 각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알려주는 여행안내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포도가 로마인들을 상징하는 과일이라면 귤은 유대인들의 관습을 보여주는 과일이다. 귤은 유대교에서 수코트라 불리는 초막절 행사에서 상징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 초막절은 유대인들의 추수감사절로 이 시기동안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드린다. 유대인들이 종교의식과 박해의 역사를 통하여 지중해를 중심으로 시트론 재배를 확산시켰다면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감귤재배를 확장시킨 장본인은 이슬람 세력이었다.

이슬람들은 주둔 경로를 따라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의 건조하고 뜨거운 지방에서 관개농업을 발전시켰다. 유대교의 경우처럼 이슬람이 이곳에 오렌지 나무를 심은 이유도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안달루시아에 정착한 이슬람들은 코란이 말하는 바의 천국, 즉 뜨거운 건조기후에서 분수가 물을 뿜어내는 평화로운 천국과 같은 정원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들은 정원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관개시설을 설치하고 이 수로를 따라 나무들을 질서 있게 심었다. 코르도바의 모스크 오렌지 파티오, 세비야의 오렌지 궁정은 이슬람이 꿈꾸던 천국을 인간의 생각으로 만든 오렌지 정원이다. 따라서 기독교도들에게 귤은 금기의 식물이었고 이슬람적 전통의 귤을 재배한다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동물이나 식물이 종교적 상징 역할을 할 만큼 그런 것들에 커다란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감귤 - 겨울의 생명력
귤나무를 포함한 식물세계, 더 나아가 자연계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유럽의 학자들이나 귀족들, 가톨릭 수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자연계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탐구하려는 르네상스 시대의 욕망은 전 세계의 귤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의 이동으로 전파된 귤나무가 이번에는 예수회의 전도 지역에 따라 세계 각지로 전파되었고 이에 따라 감귤지대가 형성되었다. 남유럽에서 진행된 귤나무의 기독교화는 보다 넓은 세계로 확산되었고 크리스마스 축제에도 귤과 오렌지를 사용하게 된다. 즉 시민사회도 이국적 귤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있는 곳에는 항상 이교도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교도에게 귤은 기독교나 이슬람의 상징과는 다르게 재생의 소망을 가져오는 식물이었다. 겨울에 과일을 맺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춥고 황량한 계절에 열매를 맺는 나무를 가질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따뜻한 환상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상해 보라!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날 귤이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거실 한 가운데 장식해 놓고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의 경건한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이교도들의 마음을 말이다. 귤은 기독교화 된 중세기 유럽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국적 문화와 먼 곳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처럼 귤은 유럽의 겨울에 위로와 따뜻함을 가져오는 과일이었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귤 역사는 어떠한가? 귤은 제주의 역사에서 귤 진상, 수탈의 역사 등 할 말이 많다. 수탈의 역사를 지나 대학나무로 아낌을 받으며 위안을 가져오던 제주 귤의 역사. 그러나 지금은 수탈과 위안의 역사를 지나 잔혹사를 맞고 있다.
 

귤은 유럽의 중세기에만 이국적인 요소를 가져 온 것은 아니다. 겨울과 귤은 제주도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놀이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한 겨울의 추운 날, 할머니의 화롯가에 빙 둘러 앉아 화로용 젓가락으로 재를 휘저으며 귤껍질을 태우는 놀이를 해 본 제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귤껍질은 피식피식 소리와 함께 휘발성 기름을 뿜어내며 미세한 불꽃을 만들어 낸다. 감미로운 감귤 향을 뿜어내며 피식거리는 소리는 미묘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그 생명도 꺼져가는 것 같다.
 

오랜 감귤의 역사를 뒤로 하고 현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적 감귤산업이 활황이다. 과거 예수회가 전 세계로 귤을 전파했다면 이제 미국은 세계의 감귤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썬키스트 같은 거대기업들의 파워, 점점 다양해지는 열대 과일들의 파워는 제주 감귤에 엄청나게 무거운 눈을 내리게 한다.

그런데 제주 감귤은 그 눈의 무게를 감당할 힘이 없다. 눈 덮인 감귤농원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이국적 풍경이다. 눈 속에서 여전히 강한 빛을 발하고 있는 모양, 그것은 제주의 겨울 풍경이기도 하다. 감귤 농민들은 아직 수확을 끝내지 못한 감귤을 두고 애간장을 태운다. 이런 풍경 가운데 서서 눈을 맞으며 언제 귤나무가 이 땅에 도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문화의 한 축을 이루며, 우리 삶의 풍경에 스며들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그냥 눈 내리는 풍경이 아니다. 제주인의 내면에 스며든 고통의 풍경화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