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는 종교와 문화사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고대인들은 자연의 물질에서 상징적 의미를 만들어 내어 그것에 종교적 성격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오렌지는 그리스 신화에서, 시트론은 유대교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리스인들의 하늘에는 복잡한 신의 계보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올림푸스 산에서 유대인들의 광야로 넘어오면 그런 신들은 없고 유대인들이 오랜 동안 믿어 온 율법이 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신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제물을 바쳤다. 그러나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구약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이게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언약이 제물을 대체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카인의 곡식보다 아벨이 바친 동물을 더 좋아한 하느님은 카인이 질투 때문에 동생을 죽인 것을 알고 분노하고 대홍수라는 벌을 내린다. 그리고 이어서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하느님에게 제물을 드린다. 하느님은 이에 만족해 더 이상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그 뒤로 하느님은 인간에게서 제물이 아니라 자신과의 언약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콥으로 이어지는 제물의 이야기가 모세에 이르면 제물이 아닌 모세의 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바쳐오던 제물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 맺어지게 된다. 
 

#유대인의 초막절
 

유대교에는 지켜야 할 언약이 참으로 많다. 그 중에서 절기를 지키라는 하느님의 명령은 유대인이 지켜야할 필수적인 약속이자 즐거운 약속이기도 하다.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은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학교나 회사, 쇼핑센터 등 모든 기관들이 일찍 문 닫는다. 이들은 옛날 선조처럼 풀을 엮어 아파트 베란다나 공터에 초막을 지어 7일 동안 이곳에서 지낸다. 귤의 뿌리인 고대의 시트론 이야기를 거슬러 가다 보면 우리는 구약성서 레위기의 초막절 규정에 덧붙이는 말에서 에트로그(Etrog)에 대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첫날 너희는 좋은 나무의 열매와 야자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의 줄기와 갯버들을 마련하고, …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서 지내야 한다.(레위기 23:40-42)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세 절기를 지키라는 언약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가 초막절이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위해 가족마다 초막을 짓기 시작한다. 각 가정은 레위기의 지침에 따라 초막절에 사용되는 네 가지 식물을 준비한다. 야자나무, 하다스, 버드나무 가지, 에트로그 열매이다. 이 식물들은 초막절에 사용될 예물이다. 초막절이 시작되면 유대인 가족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 각자의 초막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포도주를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말과 함께 초막절 행사가 시작된다.

초막절은 풀로 집을 지어 살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이 시기에는 안락한 주택을 떠나 가족마다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한다. 이 시기는 유대력으로 7월, 태양력으로는 9월-10월의 15일에서 21일까지의 일주일 동안이다. 구약시대의 초막절이 장차 오게 될 메시아를 초막에서 기다린다는 소망과 희망의 절기였다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초막절은 집이 아닌 초막에 거주하면서 광야에서 살던 시기를 돌아보는 것이다. 초막에서 1주일을 보내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개인적 의미가 아닌 유대민족 전체가 하나님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곡식을 거둬들이고 저장하는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초막에 살면서 풍요로운 수확을 통해 배불리 먹고 편안한 집에 살면서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교만함을 경계할 것을 일깨운다. 또한 모세의 인도로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초막에 살았던 시절에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를 되새기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대교는 초막을 짓는 상세한 규정까지 제시해 놓고 있다. 수카라 불리는 초막의 지붕은 땅에서 자란 식물을 사용해야 하며 특히 종려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밤에는 초막 안에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풀로 지붕을 엮는다. 호산나 랍바라 부르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는 버드나무로 제단을 두드리고, 이 의식이 끝나면 사람들은 갖고 있던 종려나무 가지를 던지고 에트로그(Etrog)를 먹는다. 이제 호산나 랍바 오후에 순례자들은 자신이 잠시나마 살던 초막을 정리하고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 때 초막절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과일이 에트로그이다. 이 과일이 바로 레위기에서 말하는 바의 좋은 나무의 열매이다. 에트로그는 초막절의 말미를 장식하는 예물이기 때문에 초막절 축제에는 특별히 정성들여 재배한 에트로그를 골라 사용해야 한다. 좋은 나무의 열매는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기억하는 상징적인 과일로서, 이 과일의 맑고 노란 빛은 초막절 의식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처럼 에트로그가 유대교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특히 사해 근방에서 에트로그를 많이 재배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유대인들의 종교의식 속에 스며든 물건들은 늘 탄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초막절의 상징물로서 에트로그는 전쟁 때마다 수난을 겪었던 것이다.

에트로그와 초막절에 얽힌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의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한다.「에덴 동산에서 온 에트로그」라는 이야기에는 초막절에 사용할 질 좋은 에트로그 하나를 사기 위해 길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람은 하나의 좋은 에트로그를 위해 자신이 번 돈의 절반을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돼 있다. 그에게 좋은 에트로그를 사는 것은 영적인 것에 돈을 쓰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리고「노인과 에트로그」라는 이야기에는 두 아이와 사는 병든 어머니가 등장해 유대인의 삶에서 에트로그라는 과일이 상징하는 바의 의미를 보여준다.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약을 써 보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단 한 가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이다. 그 때 갑자기 바람이 불며 문이 열리고 초라한 행색의 노인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어찌할 줄 몰라 비에 젖은 옷을 입은 노인을 집으로 들여보내고 노인은 아이들에게서 가족사를 듣게 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노인은 젖은 코트에서 레몬과 같이 생긴 에트로그를 주면서 어머니에게 보여 주라고 말한다. 딸이 그 과일을 어머니에게 보여주자 놀랍게도 어머니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며 병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 노인이 예언자 엘리아이며 초막절에 특별히 그들을 찾아 온 손님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에트로그는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열매, 영적인 열매, 좋은 나무의 열매로 각인돼 있다. 또한 에트로그의 모습은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의 상징을 깨닫게 하는 과일로서 초막절이라는 일시적인 자발적 빈곤을 통해 정신의 풍요로움을 불러오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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