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가 만난 문화·예술인]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문화예술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지 한 달이 되고 있는데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말씀부터 해주시죠.
안녕하십니까. 제가 맡은 소임에 충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역할 중에서 근본적인 것은 예술가들의 창작을 활성화시키고 도민들이 문화적인 삶을 즐기고 영위하는데 디딤돌이 되는 역할이 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일해 나가려 합니다.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주민예총 이사장직과 제주섬문화연구소 소장직을 수행하면서 느꼈던 문화예술재단과 직접 그 수장으로서 임하니 어떠신지도 궁금합니다.
크게 낯설지는 않지만 역할이 바뀌었죠. 재단은 어떤 단체나 한쪽의 입장이 아니고 제주도 전체를 봐야하고 예술가 뿐 아니라 도민들도 함께 봐야하는데 영역이 훨씬 넓어졌다는 차이가 있어서 할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재단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 오셨던 것으로 압니다. 이사장으로서 재단 운영 방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9월까지 재단 현황을 파악해서 10월 초부터는 실행할 수 있도록 사업들을 구체화시키고 조직개편은 연말에 가서 본격적으로 될 것 같습니다. 재단을 창의 발전소라는 별칭을 붙여서 활력적인 조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그동안 재단이 주로 문예진흥기금을 나눠주는 지원소, 정부나 도의 위탁사업을 집행하는 사업소 같은 역할이었다면 제 임기동안은 복합적인 문화서비스 기능을 강화시켜서 도민과 예술인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재단을 진화시키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그동안 담론과 칼럼은 물론 토론과 세미나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 문화예술의 문제점과 지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제시해 오셨죠. 전임 도정과 비교해 볼 때에 현 도정은 어떤가요?
예전 도정에서의 문화예술은 향토예술과 향토문화로서 커튼의 꽃무늬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도정에서는 문화의 가치를 키우는 모토로 역대의 어떤 도정과도 비교가 되지 않게 관심과 시스템의 지원이 잘 되고 있습니다.
 
△제주 문화예술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있어서 도의회의 역할도 중요하게 보고 계시죠?
도의회가 예산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도의회와 괴리된 사업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제주도의 출자출연기관으로서 도의회의 통제를 받습니다. 도의회가 문화의 시대에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면, 보다 활력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문화예술의 섬 제주 추진 방향이 발표됐는데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요?
문화예술의 섬 제주라는 것은 오래된 꿈이었고 바램입니다. 특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이번 발표를 통해서 전면적으로 부각된 것이라 할 수 있죠. 요즘 소통과 공감 부재의 시대라고 하는데 사실 문화예술의 기능이 소통과 공감입니다. 예술가는 소통하기 위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사람은 공감하기 위해서 공유하는 것인데 성공적인 예술적 프로세스는 공감입니다. 21세기 트렌드와 본질은 예술에 투자하고 키워내는 것으로 그것이 사회의 여백들을 상호보완해주고 공공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인데요. 제주문화예술의 섬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꿈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문화가 경조사 문화이죠. 과거에는 상부상조 문화로 서로 도와주는 문화이지만 요즘은 많이 변질되고 과도하게 가 있다고 보거든요. 이 시간을 좀 줄여서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참여자와 관람객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늘려가고 공유할수록 이것이 바로 문화예술의 섬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재단과 제주도가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섬문화축제 부활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합니다. 관 주도였기 때문에, 특히 기획사 선정 문제와 이에 편승한 일부 인사들의 일탈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세계섬문화축제 콘텐츠와 테마에 대해서는 매력적인 것으로 제주도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과거에 2백억 가까운 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일몰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도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이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합니다.
섬은 교류와 교역의 중심지가 되는 역할과 섬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와 지정학적 위치로서 제주도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시작을 했었던 것이죠.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실천에서 실패했지만 이제는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업그레이드시키고 리모델링하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세계섬문화축제가 아니라 민속무용단 축제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관광이라는 것이 시너지인데 관광자체가 목적성이 되고 수익성을 노려서 사업을 했던 것이 실패했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비문화적이었다면 문화적인 축제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공연단만 불러서 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인문, 예술과 함께 만든다면 명칭의 본질에 부합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성장했기 때문에 차분하고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올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년 초부터 사무국을 설치해 도민의 합의를 끌어내면서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실패만을 생각하지 말고 추진하는 방향에서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콘텐츠인 것은 분명하니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보고요.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과 베네세하우스 등 예술의 섬으로 유명한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나오시마 섬을 잘 아실텐데요. 처음 시작은 1989년 어르신들을 위한 재생프로젝트였더군요. 또 2010년에 시작된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 역시 고령화되고 활기를 잃어가는 섬을 살리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기획된 축제라 하고요.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주도였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인데요.
결론적으로 제주도는 민간주도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나오시마의 사례와 같이 품격 있고 자유로운 기업들이 과연 있을까요? 큰 회사도 많지 않지만 민간에서 문화에 관련된 투자와 관심이 매우 적기 때문에 일본의 나오시마처럼 만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초보단계이지만 끌어낼 수 있는 방향을 끌어들여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 익히고 일상생활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모든 언어는 유아기 때부터 귀착되는 것인데 아이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주어는 모어라고도 합니다. 요즘 우리는 표준어 중심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을 지키고 싶다면 부모와 가족이 집에서부터 제주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제주언어가 소멸위기에 처해있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방언이 소멸위기에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당연한 것이고 불편부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좀 더 현실화 되어야 한다는 여론입니다. 특히 고령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시급하다는데 방안이 있는지요.
지원서 양식과 정산 등의 까다로움 때문에 혜택을 못 받는 쪽이 있는데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양식을 기입하는 방식과 정산하는 법 등을 알려줄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을 도입해서라도 방안을 마련하려 합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골고루 지원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서귀포시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책적 배려 부족, 지원 배제 등 불만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좋은 방안이 없을까요?
특정 지역과 출신으로 선정하고 지원하는 것이 아닌데 제주시의 인구가 40만이 넘고 서귀포시는 17만인 비율이어서 상대적으로 제주시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대학이 없는 도시는 문화적일 수가 없는데 서귀포시를 활성화하려면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낙후되어 가는 현상과 정체되는 것은 대학에서 해결할 수 있으므로 문화소비층과 문화향유층 등을 대학을 통해서 길러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지원시스템이 IT중심으로 되어 있는데 적극적으로 누구나 동참할 수 있도록 앞으로는 쉬운 제도로 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와 창작에 임하는 이주 문화예술인들이 증가일로에 있습니다. 이분들을 위한 배려와 그에 상응한 정책 제시도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요즘 주민등록상 이전한 사람이 6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구가 증가되었고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문화적 이질성도 느껴지고 시기적으로 연착륙하는 상황이죠. 그러한 부분에서 정책 개발을 하고 지원제도를 만들 수 있겠죠. 상당히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령 문예진흥기금 신청을 받을 때 영역을 만들어서 제주도민과 이주한지 3년차가 안 되는 분들이 협력해 응모할 수 있도록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게 되면 제주도 문화예술인과 이주 문화예술인들이 자연스럽게 연계해 좋은 프로젝트가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공동작업을 통해서 이주 문화예술인들이 제주도에서 자리 잡는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재단은 이러한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예술의 융화,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문화 풍토를 만들어 가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구상하고 있는 점이 있으시면 밝혀 주시죠.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통이란 것은 지금까지 이어온 전 시대의 삶의 방식이죠. 새로운 미래로 나가는 것에서 백지장의 창조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전통이 없으면 다양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통이라는 것을 재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르와 표현에 맞게 전통을 활용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만들어서 해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문화예술의 섬 제주가 되기 위해서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정책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제주의 자연은 오랫동안 관리되어온 자연입니다. 오름이 그러하고 바닷가의 모래도 그냥 쌓인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이 풀을 심어서 모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둬 놓은 것입니다. 자연그대로 있는 것이 공짜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주 자연을 더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는 것이고 문화예술 섬 제주가 되기 위해서는 어메니티(Amenity)가 되어야 합니다. 쾌적한 삶, 쾌적한 자연이 바탕이 되어 제주 자연이 잘 유지되면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의 섬 제주가 작동하는 것이죠. 이를테면 제주도의 자연경관과 인문자원이 두 개의 큰 축이 되어 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도정에서 청정과 공존을 모토로 내걸고 있는데 이것이 예술에도 적용되어 천혜의 자연과 문화예술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장님께서 개인적으로 펼쳐보이고 싶은 문화예술 섬 제주의 미래 모습에 대해 밝혀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제 시작하고 한 달이 안 되었습니다. 10월초까지 재단의 비전과 목표를 정리하고 나면 주로 직접 만나서 듣기 위해 현장으로 다닐 계획입니다. 또한 온오프라인 정보를 자유롭게 전달하기 위한 제주문화예술포털과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홈페이지를 잘 정돈해서 최적화된 여건으로 만들 것입니다.

한정희 객원기자(큐레이터)

마지막으로 덧붙여 강조하자면 경조사 가는 시간을 아껴서 문화예술에 참여하는 시간에 투자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참여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문화예술의 섬 제주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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