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바다는 어떤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가?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고희영 감독

영화 <물숨>은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 한평생 바다와 함께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을 7년동안 취재한 기록이다. 그녀들의 은밀하고, 외로운 바닷속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비로소 발견하게 된 나와 인간의 슬픈 욕망의 이야기이다. -고희영 감독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바다와 함께 울고 웃었던 해녀들에게서 배우는 명쾌한 ‘숨’의 한 수!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감독: 고희영, 각본: 송지나, 음악감독: 양방언, 제작: 영화사 숨비, 배급: ㈜영화사 진진, 해외배급: 퍼스트핸드필름First Hand Films, 러닝타임: 81분)이 오는 29일 개봉된다.(메가박스 제주·아라, CGV제주, 롯데시네마 제주·서귀포) 고희영 감독을 만났다.

"무덤이 될 수 있는 바다를 저렇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알고 싶었다 "

△왜 물숨에 올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되돌아보면, 일요일에 쉬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제주 여인의 DNA가 아닐까 하는데요. 끊임없이 일을 하고 책을 쓰고 방송을 만들었는데, 제 나이 딱 마흔에 암 진단을 받았어요. 고속도로를 막 달리고 있는데 나 혼자 폐차가 되어 갓길에 서 있는 그런 느낌이었죠. 현재 제가 중국 베이징에 살고 있는데요. 항암치료를 받으러 한국에 왔다 갔다 해야 했어요. 항암주사를 맞은 어느 날, 제주 바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던 때였습니다. 고향이 제주시 용두암 근처여서 늘 바다에서 해녀 분들을 보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처음으로 해녀 분들이 느닷없이 제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겁니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건강도 챙기지 못하고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사실 해녀 분들은 날마다 죽을지도 모르는 바다에 뛰어드는 삶이잖아요?
예전에는 해녀 분들을 그저 풍경으로 바라봤었어요. 그리고 저는 해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늘 봐왔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면서 저는 제주해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해녀, 그분들은 숨을 멈춰야 살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해녀분들이 무덤이 될 수도 있는 바다를 왜 저토록 그리워하고 어째서 저렇게 사랑하는 것인지 다시금 깊이 생각하고 느끼게 됐던 겁니다. 엄청난 깨달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죠. 2008년 6월의 일이었는데요. 사실, 제가 직업병처럼 6㎜ 동영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었어요. 그동안 쉬임없이 해녀 분들을 촬영한 영상들을 갖고 있기도 했고요.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게 '제주해녀'라는 대상에, '물숨'에, 저를 굉장히 붙잡히게 한 요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부터 당장, 첫 촬영을 시작했으니까요.

△영화 물숨을 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하셨는지요?

제 자신이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저한테는 가장 편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요. 다큐멘터리가 주는 힘이 있거든요. 이제 세상은 다 좋아져서 돈으로 살수 없는 게 없어졌잖아요. 요즘은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잖아요? 그런데 유일하게 사지 못하는 게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그 시간의 기록이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어떠한 객체, 물상들이 변화되고 바뀌고 하는, 시각, 시각의 기록이 흥미롭고 좋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평생 할 것 같아요.

올해 11월에 따뜻한 영화 <시소> 다큐멘터리 한편이 더 개봉됩니다. 제 계획은 1년에 영화 한 편씩 개봉하는 것이었는데요. 올 해엔 어느새 2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숨>을 통해서 많은 해녀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을 통해서 숨에 대한 것들을 얻기도 했고요. 자기의 숨만큼 바다에 있다 오고 욕망을 자르면서 사는 모습을 보았죠. 어떻게 보면 저한테 병이 왔던 것도 제 숨은 짧은데 괜히 상군 바다를 욕심내다가 이처럼 덜컥, 병마가 찾아든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답니다. 산다는 것은 숨 쉬는 것인데, 숨을 더 잘 쉬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죠.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포스터. 9월 29일 개봉된다.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 <물숨>에서 관객들이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 말하고 싶으신가요?
관객 분들이 해녀 분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바다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해녀 분들이 초보 해녀 분들한테 바다에 갈 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은 전복 어떻게 따라, 이런 것이 아니랍니다. '물숨을 조심해라.'라는 말씀인데요. 그런 가르침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자신의 바다를 발견했는지, 그리고 숨의 길이만큼 그 안에서 잘 살고 있는지를 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기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물숨>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7년 동안 촬영했기 때문에 분량이 어마어마합니다. 편집 작업만 2년 했거든요. 버리는 작업이 힘들어서 영화로 다 못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어요. '나남'에서 펴낸 책 타이틀 역시 <물숨>이죠. 해녀 분들은 거리낌 없이 당당하고 멋진 여성들입니다. 사실 저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다녔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물숨>의 주인공 할머니는 딸을 바다에서 잃고도 다시 그 바다로 나가거든요.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의 슬픔이나 고통,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때 슬픔을 치료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아파서 항암주사를 맞았다는 말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었는데요. 나중에 촬영이 끝나서는 언론에서 밝혀지기도 했죠. 올 초에 우도에 들어갔을 때 저를 보자마자 82세 한 할머니가 저를 꼬옥 안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몸은 괜찮냐, 나는 네가 아픈 줄도 몰랐다, 하시는데, 그때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울컥하더니 펑펑 울었어요. 처음으로 펑펑. 그때, "삼촌들이 저를 버티게 해 준 힘"이라고 말씀드렸던 생각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통달한 제주해녀의 인문학적 가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일본 아마와의 차이점이라면?
사실 <물숨>은 국내보다는 해외를 목표로 제작했던 이유가 더 많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해녀는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이다." 라고 얘기하니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도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다 위대하다."고요. 그래서 제가  "그날 바람의 조류, 방향, 바다 생태계 변화를 가장 빨리 알고 기억하는 사람은 신지식인인 이 사람들 밖에 없다. 아침에 해녀들이 일어나면 이 바람이 어떤 바람이고 내일은 어떤 바람이 올 것인지 눈으로 다 안다." 말해줍니다. 그러면 "정말이냐?"고 되물어요. 그리고 다시 제가 "항구가 하나 들어서면 어떤 해초들이 먼저 사라지는지 다 안다. 심지어 맨 몸으로 아무런 장비 없이 바다 속에 들어간다. 이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또 이 사람들은 숨비는 일로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꿋꿋하게 키운다." 말해주죠. 이러면 외국 사람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합니다. 그게 우리 제주해녀 분들의 인문학적 가치라고 생각하고요.
아마와의 차이점이라면 일본에 직접 가서 그분들을 촬영하고 인터뷰도 했었는데요. 서로 다른 점은 '공동체문화'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경우, '할망 바당' 같은, 나이 많은 해녀 우대 바다가 있죠. 또 대상군 해녀가 소출이 변변치 못한 해녀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이런 나눔과 배려의 문화들이 죽 내려왔던 공동체문화가 결국은 일본의 아마와 가장 구분되는 문화가 아닌가 하는 것이죠. 일본 아마는 많은 숫자도 아니고 공동체문화도 아니기 때문에 개개인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우리 제주해녀 공동체에는 모계가 중심이 되어서 내려온 그런 문화가 있죠. 그래서  유네스코에서 그러한 제주해녀의 공동체문화 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해녀, 그리고 물숨...

△앞으로 제주해녀와 관련한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해나갈 계획이신지요.
이것은 제가 다른 영화를 제작하면서도 평생 할 프로젝트입니다. 우도의 마지막 해녀 분들이 50대 초반으로, '코스모스회'인데요. 저는 그분들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아마 10년 뒤에는 또 다른 주제로 해녀 영화를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분들을 계속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요.


△<물숨>은 지난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도 해녀들의 일상과 삶을 기록한 다큐영화이죠? 촬영과 진행, 모든 제작과정이 만만치 않은 만큼, 제작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돈이 있어서, 지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비로 했답니다. 누구한테 돈을 받으면 마음의 빚 같아서 불편해지고, 빨리빨리 만들기 위해서 허둥댈 것 같았죠.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어서 방송국에 팔고, 책을 출간하고, 청탁이 오는대로 이것저것 원고를 쓰고, 북경에서 중국 곳곳의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 리포팅 생방송을 매일매일 해서 제작비를 모으면 팀을 소집해서 우도로 들어갔어요. 그 제작비를 다 쓰면 나오고,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었죠. 사실, 7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던 것은 제작비를 구하고 마련하느라 그랬던 것이랍니다. 그러다보니까 <물숨>을 빨리 만들기 위해서 허둥대지 않고 해녀 분들을 더욱 찬찬히, 진중하게,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감독님께서는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고향 제주도에서 마음으로부터 해녀들을 보고 큰 힘을 느끼게 되면서 다큐 영화를 제작하셨는데요. 평소에 감독님께서는 힘든 시기와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만나는 주인공 분들 혹은 잠깐 출연하시는 분들도 저는 '길 위의 스승'이라고 얘길 합니다. 해녀 할머니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위인전의 멋있는 말보다 훨씬 큰 감동으로 제게 깨우침과 가르침을 주거든요. 바다에서 딸을 잃어도 바다를 원망하지 않고 또 바다에 나아가서 위로를 받는 그런 모습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진솔하며, 그래서 본받을만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길 위의 스승들'을 통해서 항상 제 자신이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객원기자 한정희(큐레이터)

△감독님. 오랜 시간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진솔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빛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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