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기자 탐사> '오렌지 축제 ,영주의 횡포를 거부한다 '

과일은 어디에서든 항상 축제를 동반한다. 수확의 기쁨이든 분노의 표시든 과일에는 군중을 광장으로 내모는 힘이 있다. 축제의 기원은 보통 풍요로운 수확물에 대한 감사의 의식이 많지만 축제의 현장이 고대에서 현대로 올수록 분노의 표시를 드러내거나 서민의 애환을 반영하는 축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축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서 출발해 자연과 신에 대한 외경을 표현했고 후에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만을 반영하면서 다양한 변천사를 겪게 된 것이다. 과일 축제 중에서도 현재까지 지속되는 오렌지 축제는 수확의 기쁨보다는 지배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탄생한 축제이다. 오렌지, 레몬, 감귤이 등장하는 축제는 대부분 지중해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서 벌어진다.
 
 -이탈리아 이브레아 오렌지전투축제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이브레아에서는 해마다 3월이면 오렌지를 무기로 하는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수백 톤의 오렌지를 가지고 시민과 영주 편이 되어 도시 한복판에서 제법 사나운 전투를 벌인다. 오렌지가 전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가 된 것은 중세기로 거슬러 간다. 중세기의 영주는 권력의 힘으로 초야권이라는 악습을 만들어냈다. 즉 결혼을 앞둔 신부는 결혼전날 미래의 남편이 속한 지역의 영주와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관습인 것이다. 그러나 순결을 지키려는 비올레타라는 이름의 물레방앗간 주인의 딸은 이러한 악습에 저항해 영주의 머리를 베어버린다. 신부의 저항은 서민들을 억압하는 중세적 장치에 분노하게 했고 곧 걷잡을 수 없는 봉기를 촉발시키면서 전투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브레아 오렌지 축제는 당시 악습을 자행하던 영주에 대한 반란을 보여주는 축제이며 기존지배층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축제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영주의 군대역할을 맡은 마차 팀과 시민 팀으로 나뉘어 오렌지를 던지며 싸운다. 오렌지는 영주의 잘린 머리를 상징한다. 참가자는 두 팀 중 한 팀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도 가능한데 전쟁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로 중립을 의미하는 빨간 모자를 쓰면 된다. 이 오렌지 전투는 단순 축제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과격하다. 오렌지를 맞아 멍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부상도 각오해야 할 만큼 격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어 전투기간 동안 의료팀이 항시 대기 중이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보다 오렌지 전투를 더 기다리는 까닭은 오렌지를 던짐으로써 지역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망통 레몬 축제
니스, 칸느 등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 휴양지로 꼽히는 망통은 해안도로를 따라 조성된 고즈넉한 지중해 도시이다. 1860년 모나코에서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로 이양된 망통은 넉넉한 태양과 온화한 지중해의 기후 덕분에 최상급의 레몬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해마다 2월이면 레몬 산지 망통은 축제로 소란스럽다. 망통의 레몬 축제는 니스에서 열리는 카니발을 시작으로 모나코 FI 그랑프리에 이르기까지 휴양지인 코트 다쥐르 지방 전역을 아우르는 축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레몬 축제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대규모 과일 축제로 1934년에 시작돼 매년 40만 여명의 관광객을 망통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동화나 만화작가들의 작품을 소재로 독특하게 구성되는 이 축제는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을 축제의 소재로 삼기도 하고 피노키오같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만화나 동화의 주인공이 축제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상하던 동화 속 세상이 현실로 재현되어 망통 시가는 동화의 무대로 변하고 축제 참가자들은 잠시나마 동화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망통 레몬 축제에는 아스테릭스 같은 다양한 만화가 주제로 선정되기도 한다. 이들 만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함으로써 단순한 과일축제를 벗어나 문화의 축제로 확장된 것이다.

레몬과 오렌지로 만든 동화속의 집

 프랑스 사람들은 문화를 상품화하는 방법을 잘 안다. 미술작품이 그렇고 패션이 그렇고 레몬이 그렇다. 물질을 물질로서만 본다면 레몬은 그냥 신맛 나는, 가끔은 처리 곤란한 물건이 돼 버리지만 망통의 해안과 조화를 이루는 레몬 색채를 빛내며 대중들이 좋아하는 동화나 만화, 혹은 특정 국가를 주제로 하는 문화적 옷을 입히면 물질은 곧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한다. 레몬이라는 물질을 하나의 이미지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프랑스 사람들은 이 축제에서도 그들의 예술적 수완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망통 레몬 축제에서는 오렌지로 만든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수많은 귤과 레몬으로 이루어진 긴 퍼레이드도 만들어 낸다. 이 행렬을 만드는 데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가한다. 레몬과 귤 재배에 종사하는 사람들, 정원사, 화가, 금속 가공업자 등 망통 지역민들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수십만 개의 고무줄을 사용해 레몬과 오렌지, 귤 등을 엮어 거대한 공동작품을 만들어 보이는 것이다.

객원기자 백금숙(제주대 교수)

망통은 레몬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장 콕토가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중해의 작은 어촌을 찾은 장 콕토는 망통의 해변풍경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망통 해안가 길 끝에 위치한 장 콕도 미술관은 옛 항구에 지어진 성안에 있다. 장 콕토는 이 성을 복구한 뒤 작업실로 사용했는데, 피카소가 이곳에서 장 콕토를 모델로 그린 그림도 걸려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미술관과 오렌지와 레몬으로 가득 찬 열대 정원은 문화와 자연이 제대로 어우러진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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